심리학을 공부하다보면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이 왜 그럴까 곰곰히 들여다 보면 필연적으로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힌트를 얻게 됩니다. 이번에도 무사히 학기를 마치기 위해 썼던 여러 기말레포트를 들여다 보니 온통 부모님 이야기 밖에 없네요.
저는 일련의 사건을 거쳐 아버지를 미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동안은 그 미워하는데 사용하는 에너지가 상당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많은 세월이 지나 미워함에 쓰는 에너지도 흐릿해졌지만 여전히도 진행중이긴 하죠.
실은 저도 내심 세월이 해결해주길 바랐던 거 같습니다. 세월이 지나 결국은 내가 틀렸고 그래도 아버지를 용서해야만 한다고 내 안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길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자해지라고 했던가요. 여기저기 내 안에 뒤엉킨 메듭을 풀어주든 잘라내어주든 그 사람이 해줘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생략... 아버지에게 화가 나는 마음 저 밑바닥에 아버지에게 바랬던 것은 무엇이었는지요? 어쩌면 선생님 주변의 사람들도 선생님께 그러한 것들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생략...
와중에 교수님에게서 제가 쓴 레포트에 대해 코멘트가 날라왔습니다. 코멘트 중 위의 발췌한 문장이 자꾸 마음에 밟히는데요. 아버지를 미워하는 그 과정에서 숱하게 들은 여러 잔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질문입니다. '너 그러다 아버지 돌아가시면 후회해 그만 미워해.' '미워하는데에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어라' 등의 말들에 분노하던 시기도 다 지나가버렸으니 말이죠.
그렇게 미워하는 아버지에게 저는 뭘 바랬고 바라고 있을까요. 아니 바라는 것은 있을까요.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질문입니다. 여기에 대답해버리는 순간 저의 20대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이미 지나버린 세월이지만 그 아무도 지나간 세월이 의미가 없길 바라지 않으니까요.
내가 아버지에게 원하는 것. 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 저는 그것이 결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생각이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 그런 모호함에서 오는 오해일지라도 지금은 그렇게 단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은 아버지와 닮았다는 말입니다. 필사적으로 그 사람과 다르게 살기 위해 매분 매초 노력하는 저에게는 사형선고와 다름 없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의 코멘트는 일정 부분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이렇게 저렇게 고민이 깊어지고 소화하고 보니 기분이 썩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네요.
편지를 쓰는 지금 비가 옵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편지가 축축하네요. 장마라는데. 이렇게 비가 오다 말다하는 장마는 또 오랜만이네요. 시원하게 비라도 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아참 그리고 요상하게 감기가 유행하는거 같아요. 아침에 머리가 아프고 목이 칼칼한게 분명 감기기운입니다. 오뉴월엔 개도 안걸린다는 감기. 7월 되자마자 걸려버리기~ 모쪼록 감기 조심하시고 장마철 불쾌지수 안녕하시길...!
양드림.
ps
근래에 줄창 paris match의 노래를 듣다가 어느새 롤러코스터로 넘어왔습니다. 마성의 보컬과 훌륭한 세션... 장마에 이만한 앨범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