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안해. 18 Feb, 2022 ∙ 1468 Subscrib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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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1차 컷편집을 서둘러 끝났다. 서두른 이유는 몇 가지 있지만, 그중 하나는 2회 출연자 섭외 때 설득이 수월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영상을 직접 보여주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으니까. 급하게 마무리 했더니 화면전환이 매끄럽지 못하고 엔딩은 급하다. 완성은 멀었다.
전공 공부 때 주워먹은 지식 하나가 생각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라틴어다. 고대 그리스극에서 자주 활용되던 연출로 ‘기계장치의 신’을 의미한다. (요즘에 브랜드 로고로 만나서 신기하면서도 반가운 단어다.) 아무리 복잡한 갈등이 있더라도 일종의 수레(기계장치)에 탄 신이 등장하면 갈등은 단번에 해결된다. 돈도, 사랑도, 가족관계도 모든 문제가 신이 등장하면 끝, 해결. 이것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21세기 관객에겐 어림도 없는 결말이다.
그래서 고민이다. 내 다큐멘터리의 엔딩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되지는 말아야 할 텐데. ‘갑자기 이렇게 끝난다고?’ 같은 반응이 올 것 같아 엔딩이 더 고민된다.
그러나 당분간 편집을 멈추기로 했다. 내 눈이 객관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맥락과 전후 스토리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바람에 시청자의 입장에서 무엇을 넣고 드러낼지 판단할 수가 없다. 이럴 때 내가 아는 방법은 하나다. ‘사회적 거리두기.’ 앞으로 며칠은 편집 파일은 쳐다도 안 볼 것이다. 이성적 판단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서다. 그래야 고칠 점들이 보인다. 며칠 뒤 다시 영상을 봤을 때 너무 당황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희소식, 2회 출연자가 섭외됐다.
+하루에 50번씩 피드백을 확인합니다. 동물은 음식을 먹고 살지만 저는 피드백을 먹고 삽니다. 그렇습니다. (피드백은 뉴스레터 하단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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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usic by 을지로 도시음악
アスファルト・ひとり… (Asphalt Hitori…) by E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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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Novel by 단편서점
킬러, 조 기자 2부: '킬로 조의 첫 살인'(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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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vent by season & work
창업자 인터뷰, <상인의 시간>
청년 경제 강연, <나는 왜 돈이 없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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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スファルト・ひとり… (Asphalt Hit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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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느꼈겠지만 요즘 시티팝 추천을 한동안 안 했다. 시티팝만 줄창 소개하던 곳에서 갑자기 디스코 훵크로 넘어가 놀고 있다. 그게 맞다. 조금은 시티팝에 흥미를 잃어버린 듯하다. 그래서 ‘이 참에 시티팝 음반 싹다 정리하고 디스코로 갈아타자!’ 라는 이상한 결심을 하고서는 자주 소통하는 커뮤니티에 “시티팝 LP 처분합니다~” 라고 대략 흘려 뒀는데, 흘리자 마자 연락이 두 군데에서 왔다.
ANRI의 [Timely]라는 명반을 원한다는 사람과 Kadomatsu Toshiki 선생님의 앨범 전부를 내놓으(?)라는 사람 두 명이다. 문제는 [Timely] 같은 경우는 가격이 5배가 뛰었고, 카도마츠 선생님의 에센셜한 음반들도 전부 4-5배는 올랐다. (아니 젠장할 내 주식은 반토막이 나고 있는데 Lp가격은 수익률이…?!)
조금은 기뻐해야 할까. 분명히 자본주의 시대에 내가 산 물건의 가격이 몇 배로 뛰었다는 건 기뻐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팔려고 하는 순간 느꼈다. 아 이건 그냥 물건이 아니구나. ‘겁나 팔기 싫다.’ 라는 생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여차저차 구매자에게도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팔려고 하니 도저히 못 팔겠다고 죄송하다고. 재밌는 건 그 분들은 나보다 훨씬 음반이 많은 헤비 콜랙터기 때문에 단 번에 이해해 주시더라. 원래 그렇다고 팔려고 아무리 마음먹어도 팔기 어렵다고 이해한다고.
나는 참 미련 없는 삶을 살고 있노라고 누구보다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겁나게 미련이 생긴다. 말 그대로 겁이 난다.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있다가 죽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는 이런 감정을 느끼기 싫어서 소비도 잘 하지 않고 사람도 잘 친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Lp가 오랜만에 이 기분을 들게 해주다니.. 요물이다 요물.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팔려다 마는 바람에 오랜만에 시티팝 음반들을 정리하면서 한참 음악을 들었다. 미련을 가지고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너무 행복한 음악들이 가득했다. 오늘 소개하는 곡은 그 중 하나다.
감동먹은 곡이 한둘이 아니지만 [Timely] 앨범을 오랜만에 들었더니 정말 압권이다. 아 물론 가격이 올라서 좋게 들리는 건 절. 대. 아. 니. 다. 커버부터 너무 이쁘다. 널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을꺼야…
EPO의 본명은 사토 에이코. 이전에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다. 데뷔 때 야마시타 타츠로가 이끄는 ‘슈가 베이브’라는 밴드의 ‘DOWN TOWN’을 커버했는데. 오늘 소개한 곡은 그 커버 앨범의 수록곡이다. <アスファルト・ひとり…> ‘아스팔트 혼자’라고 직역할 수 있는데, 아스팔트 위에서 외로워하는 내용이다. ‘사람은 서울에서 살아야지!’ 같은 말을 부정하면서 도회적인 것에 대한 회의감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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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프레임드> 시리즈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시리즈', 국내 드라마 및 예능은 '티빙', 최근 화려하게 부활한 SNL을 앞세운 '쿠팡 플레이' 등 ‘대OTT의 시대’에 맞춰서 여러 플랫폼이 각자의 스타일을 앞세워서 여러분에게 구독을 강요하고 있다. (좋아요, 알람설정 강요 안하는게 다행) 몇몇 분들은 이미 짐작을 했겠지만, 나는 단편극장을 쓰면서 왓챠를 정말 많이 애용하고 있다. 왓챠가 작년 초부터 단편으로 집중을 하더니 작년 말에는 <언프레임드>라는 자체 프로젝트까지 진행하였다. 박정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 네 명의 배우가 프레임에서 벗어나 직접 이야기를 쓰고 연출한 숏필름 프로젝트이다. 이번 2월 동안은 이들이 만든 흥미진진한 단편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에이비의 감상 노트
싱글맘 소영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살아가는 강인한 엄마이지만, 그는 남들 모르게 일찍 사별한 남편, 원석을 그리워하고 어린 딸, 반디의 가진 언어 문제(말 더듬는 것)를 마음 아파한다. 마치 주변의 모든 불행은 자신 때문에 온 것이라 믿는 소영. 어느 날 시어머니 집을 방문했는데, 남편의 방에서는 말을 더듬지 않는 반디를 보고 소영은 반디에게 지금껏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알려주기로 마음먹는다.
옛날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
어떻게 보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처럼 지워지지 않는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보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이 주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가려져있다. 마치 원석의 죽음은 지금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 가려져서 사라지고 잊혀져 가고 있는 소중한 무엇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원석이 말했던 뒷산의 반딧불이처럼.
이 영화를 보고 내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영상이 직업이다 보니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카메라. 예전에는 그렇게 좋았던 최신 카메라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나의 시작인 니콘 카메라를 잊지 않는다. 남들은 하찮다고 여길지 모를 그 카메라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니까. 사라지는 것은 없다. 다만 내 안에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을 뿐이다.
에이비의 영화 포스트잇
영화를 촬영하면 할수록 개인적으로 벤 스틸러(Ben Stiller)처럼 본인이 연출하고 주연을 하는 사람들을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어떻게 현장에서 연출하기도 바쁜데 연기 감정까지 잡을까? 그걸 최희서 배우가 했다!
최희서 배우는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최고의 배우 아닌가!!) 이 이야기는 3년 전에 쓰기 시작했지만, 박소이 배우를 만나고 큰 영감을 받아 용기를 내서 완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최희서 배우가 박소이 배우의 연기력을 믿고 진행한 작품이라고 박소이 배우가 싫다고 했으면 안했을 것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최희서 배우와 박소이 배우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엄마와 딸로 호흡을 맞춰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에도 최고의 캐미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또한 최희서 배우는 촬영, 조명, 로케이션 등 모든 부분들을 꼼꼼히 체크하면서 제작하였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압권은 음악! 음악감독 박인영이 참여한 영화 음악은 개인적으로 영화의 장면들을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해준 것 같다. (박정민 배우도 그렇고 다들 음악을 너무 잘 고르는 것 같다!)
에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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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조 기자>
2부: '킬로 조의 첫 살인'
3회
메일함에 들어간 용희는 검색창에 ‘이수진’ 세 글자를 입력했다. 그러자 이수진이라는 이름으로 보낸 메일들이 나왔다. 모두 15개였다. 그중에서 ‘안읽음’으로 표시된 메일은 5개였다. 메일 수신날짜를 보니 용희가 인천 어린이집 대마초 사건에선 손 떼고 정치부로 돌아간 시점과 동일했다. 마우스 커서가 메일 제목 위를 의미 없이 오갔다.
[기자님, 부서 옮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기자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자님, 저 주소 바뀌었습니다.], [많이 바쁘신가요? 메일 보시면 연락 바랄게요!] 모두 용희가 읽지 않은 메일의 제목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메일 제목 위에 가장 최근에 도착한 메일이 하나 있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모두 이수진 씨, 인천 어린이집 대마초 사건에서 대마초를 피운 용의자가 보낸 메일이었다. 수진 씨는 이미 구속된 상태였기 때문에 메일을 보낼 수 없다. 아마 가족이나 변호사, 지인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이 메일로 보냈을 것이다.
용희는 목이 탔다. 그래서 하이볼을 마시기 위해 잔을 들었지만,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빈 잔이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다 마셔버린 것이다. 용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냉장고와 찬장에서 위스키와 토닉워터, 얼음을 꺼내 빈 잔에 넣고 섞었다. 순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완성된 하이볼을 그 자리에서 다 마셨다. 그리고 그 상태로 몇 초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집중해서 알코올의 움직임을 추적했다. 식도를 타고 들어간 알코올이 탄산을 타고 몸에 서서히 퍼지는 게 느껴졌다. 차가운 취기가 뒤통수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용희는 잔을 싱크대에 넣었다. 원하는 정도의 취기를 얻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용희는 약간의 취기를 빌어 수진 씨에게 온 메일을 읽었다. 메일의 수도 짧았고, 담긴 내용도 길지 않았다. 하지만, 용희는 꽤 긴 시간을 들여 메일을 읽고 또 읽었다. 수진 씨는 용희에게 많은 말을 했다. 자신을 변호하던 변호사가 갑자기 그냥 죄를 인정하는 대신에 어린이집 원장에게 돈을 받자는 말을 하고, 자신을 믿고 있던 부모님도 이제는 그만하자는 식으로 태도가 바뀌었다고 했다. 경찰마저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데 자신은 어디에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이런저런 말을 통해 수진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바로 용희였다.
용희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자기 다음으로 어린이집 대마초 사건을 담당한 이용호 선배의 번호를 눌렀다. 번호와 연동된 개인 SNS 프로필 사진에는 이 선배 가족의 모습이 있었다. 한복을 입은 선배 부부 사이에는 결혼 8년 만에 가진 아기가 있었다. 돌잔치 때 찍은 사진인데, 용희도 갔었다. 시계를 봤다. 새벽 3시였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감정적으로 나서면 일을 그르친다. 용호 선배가 신입 기자들에게 늘 하는 말이었다. 용희는 그 말을 되새기면서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앞으로 할 일을 생각했다. 그동안 읽지 못했던 인천 어린이집 대마초 사건 관련 기사와 재판 기록을 찾아본다. 사건 관련 주변 인물들을 취재한다. 어린이집 원장과 그들 가족의 계좌를 확인해서 이상한 점이 없는지 알아본다. 수진 씨의 죽음에는 이상한 점이 없는지 알아본다. 어쩌면 수진이 보낸 마지막 메일이 조작된 메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미 수진 씨는 죽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하자는 거지?
+글소개: 29살 조 기자의 성장형 액-숀 활극.
최현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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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조 기자> 1부, prologue: '킬러 조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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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커피그림> 연재완료
+글소개: 29살 정민과 27살의 상민의 여름 날. 그리고 카페 ‘커피그림’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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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청년 경제 강연 <나는 왜 돈이 없을까>
01 - 이선호 과학커뮤니케이터 / 6.28(월) "4차 산업혁명이 온다는데 온 거야 만거야"
02 - 김얀 작가 / 7.1(목) "사회초년생! 오늘부터 '돈'독하게 모아보자!"
03 - 김찬호 교수 / 7.5(월) "나는 왜 돈이 없다고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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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과일 season & work heavyfeather.doc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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