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아요. 용희 씨가 이 총을 사용하는 것은 용희 씨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거죠.”
김원진은 말을 마치면서 내 가방을 향해 손을 펼쳤다.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괜찮아요. 꼭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게 아니라, 가끔은 내 기분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죠. 알아요. 당신이 저 총을 들고 오면서 느꼈을 감정. 무방비한 채 거리를 걷는 수많은 사람. 그들의 생명이, 운명이 내 마음과, 내 선택과, 내 손가락에 달렸다는... 마치 신이 된 듯한 그 권능감. 용희 씨, 정치부로 옮겼죠? 취재하면서 만나는 정치인들을 보면 때로는 이해가 안 될 때 있죠? 그 배지가 뭐길래 자기 가족과 재산마저 포기하며 집착할까. 그들의 국회의원 배지가 바로 당신의 권총이에요. 그리고 그들은 그 배지의 맛을 알기 때문에 집착을 하는 거죠. 권력.” 김원진은 가방에서 권총을 꺼내 용희의 손에 올리며 말을 이었다. “용희 씨에게는 이제 권력이 생겼어요. 그 권력을 무조건 정의에만 사용하라는 건 아니에요. 그러면 권력은 감옥이죠. 감옥에 갇히면 탈출하고 싶기 마련이고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김원진은 말을 잠시 멈췄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용희 씨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거예요. 다만, 전에 말씀드렸던 주의사항만 지키고요.”
용희는 손 위에 올려진 권총을 움켜쥐었다.
“다시 알려주세요. 발터 PPK요. 총은 익숙한데, 이 총은 아직 낯설어서.”
용희가 말했다. 김원진은 몸을 돌려 용희를 바라봤다. 김원진의 얼굴에는 미소가 올려져있었다.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나오며, 내비게이션을 보자 11시가 넘었다. 퇴근하고 바로 왔으니 대략 오후 7시쯤에 도착했다고 생각하면 4시간 가까이 김원진의 아지트에서 시간을 보낸 것이다. 핸들을 잡은 손이 계속 떨렸다. 피아트 500은 이상이 없었다. 아마 오랜만에 총을 쏘면서 느낀 반동의 여운과 그 반동을 제어하기 위해 억지로 힘을 주었던 탓인 것 같았다. 그 근육의 피로감이 왠지 모르게 좋았다.
“아까 말했듯이 총을 사용하기 전에 이 번호로 장소와 시간, 그리고 대상을 알려줘요. 혹시나 너무 급하면 사용 후, 10분 내라도 알려주고요. 방법은 전화나 문자, 다 상관없어요. 알려만 줘요. 그래야 우리가 당신을 도와줄 수 있어요.” 김원진을 ‘우리’라고 했다.
“저를 도와주는 이유는 뭐예요?”
“할아버지께서 자신의 후계자로 당신을 선택했으니까요.”
“할아버지께서는 이 일을 왜 하신거죠? 당신들은 할아버지와 왜 함께 일했고?”
용희의 물음에 김원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용희는 재차 묻지 않았다. 다만, 김원진이 대답할 때까지 그의 얼굴을 계속 바라봤다. 김원진은 자신을 향한 시선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은 이제 킬러예요. 당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누군가를 죽일 수 있죠. 우리는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사실을 숨겨줄 거고요. 일종의 살인면허가 당신에게 부여된 거죠. 우리는 바보가 아니에요. 당신은 당신의 살인면허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죽여달라는 사람을 죽여줘야 하죠. 비율은 2대1. 당신이 죽이고 싶은 사람 2명을 죽일 때, 우리가 원하는 사람 1명을 죽여주면 돼요. 당신이 만약 2명을 너무 오랫동안 죽이지 않았을 때, 여기서 오랫동안이라는 기간은 5년이에요. 아무튼, 5년간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 때도, 우리가 원하는 사람 1명을 죽여주면 되죠. 참고로, 그럴 때마다, 당신에게는 우리가 금전적으로도 보상을 해드립니다.”
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용희는 김원진과 나눴던 대화를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