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에 잔다> 12 Aug, 2022 ∙ 1536 Subscrib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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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 그날도 비가 왔다. 트럭에 타기 전 물었다. “비 오는 데 시험 봐요?” (피할 수 있다면 피하자는 치졸한 심경으로) 감독 경찰관이 답했다. “비 오면 운전 안 할 거예요? 타세요.” 과연 빈틈없는 말이라 감탄하며 트럭에 올라탔다. 초보에게 빗길 주변 시야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연습 주행 때는 늘 화창했다. 결과는 차로 변경 하다가 탈락.
2022년 여름, 대형 면허시험 이틀 전 날이었다. 오후 6시에 잤다. 일어나니 오전 6시. 세상이 뒤집혔다. 괜찮냐는 연락이 와있었다. 서울이 물에 잠겼다. 순간 오늘 운전 연수 받으러 가도 되나 싶었다. 그때 스친 한 마디 “비 오면 운전 안 할 거예요?” 바로 집을 나섰다. 오히려 좋았다. 변수가 풍부할수록 실전에 강해진다. '차라리 시험 날 비와라, 그 때의 설욕전이다'라는 마음을 살포시 먹어봤지만, 정작 시험 당일은 맑았다.
시험은 실점 없이 합격했다. 변수는 다른 곳에 있었다. 같이 시험 본 사람들이 다 끝나야 합격 서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른 시험용 버스가 갑자기 고장 났다. 별안간 귀가 시간이 늦어지기 시작됐다. 결국 예정보다 40분 정도 늦게 끝났다. 35분 걸리는 서부면허시험장에 들러서 40분 정도 기다려 먼허를 발급 받으니 러시아워가 됐다. 마포구로부터 1시간 10분 걸려 마침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후 6시였다. 집 나간 지 12시간 만이었다. 녹초. 그렇게 또 오후 6시에 잤다. 이번엔 세상이 뒤집히지 않았다. 무튼 이제 45인승 버스도 12톤 이상 화물트럭도 운전할 자격이 생겼다. 언젠가 요긴하게 쓰이길, 안 쓰여도 그만이지만.
학과교육 쉬는 시간 동안 창밖을 보니 훈련소 시절이 떠올랐는데 이 얘긴 다음 주에 써보도록 해보겠다.
+하루에 50번씩 피드백을 확인합니다. 동물은 음식을 먹고 살지만 저는 피드백을 먹고 삽니다. 그렇습니다. (피드백은 뉴스레터 하단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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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usic by 을지로 도시음악
Rocky Trail by Kings Of Conven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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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Novel by 단편서점
킬러, 조 기자 2부: '킬로 조의 첫 살인' -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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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y Trail
by Kings Of Conven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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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입추는 과학인건가.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한바탕 비가 쏟아지더니 제법 선선해진 바람이 분다. 이 난리통에 윗집 아저씨(도큐라는 뜻)는 대형면허를 따러 비를 뚫고 파주를 왔다갔다 하시는데 대단하시다 증맬루. 조만간 미니버스 빌려서 여행을 가볼까나. 김기사. 출발해.
날이 선선해질 때까지 존버하고 이 노래를 소개한다. KOC형님들 특유의 습관이 모두 들어간 곡. 심지어 12년이나 걸려 나온 신곡임에도 이전에 발표한 곡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친숙함이 느껴진다. (나쁘게 말하면 킹스 오브 또비니언스) 경쾌한 스트링 사운드와 클래식기타로 치는 ‘뵈’의 부드럽고 리듬감 넘치는 코드 진행. 통기타로 밟아주는 ‘오여’의 멜로디라인까지. 말하듯이 부르는 노래까지. 선선한 가을이면 전어를 찾듯이 KOC 형님들을 찾아서 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윗집 아저씨(도큐라는 뜻)가 기타를 샀다는 이야기는 일전에 했던 것 같은데, 둘이 붙어 다닌지도 어연 수십년이 흘렀건만 같이 기타로 듀엣을 해본적은 없는 것 같다. (한 10몇 년 전에 윗집 아저씨한테 같이 해보자고 말은 했었던 듯.) 매번 이 아저씨들 노래를 듣다보면 기타 듀엣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들리는 것 보다 꽤 난이도가 있기에 매번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어이 윗집 아재. 도전?
+<Me In You> by Kings Of Convenience
KOC 아재들의 <Me In You> 일전에 소개했던 적이 있던 것 같은데, 이제 100회가 넘다보니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재들이 사는 집 지붕에서 찍은 뮤직비디오. 진짜 너무 멋있고 노래도 좋아서 주기적으로 듣고 보는 뮤직비디오다. 가자 김기사.
양의 아주 아주 짧은 인스턴트 지식
Kings Of Convenience. 노르웨이 출신의 듀오. 아이릭 글람벡 뵈(Eirik Glambek Bøe), 얼랜드 오여(Erlend Øye)가 함께 98년에 결성한 듀오다. 뵈가 주로 클래식 기타를 치며 코드를 잡아주고, 오여가 통기타를 치며 멜로디 라인을 잡아준다. 발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잔잔한 목소리로 아주 편안한 음악을 하는 팀.
원래 이 듀오는 Anders Waage Nilsen, Øystein Gjærder Bruvik과 함께 ‘Skog’라는 밴드로 음악을 시작했다. KOC 이후에 얼랜드 오여는 솔로 활동이나 프로젝트 밴드인 ‘The whitest Boys Alive’ 를 결성해 음악활동을 하기도 했고, 아이릭 글람벡 뵈는 오여를 제외한 ‘Skog’ 멤버들과 함께 ‘Kommode’ 라는 밴드를 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CM송으로 많이 쓰여서 굉장히 유명해진 케이스다. 들어보면 아! 이 노래! 아 이 노래! 하실듯.
+<Fight or Flight or Dance All Night> by Kommode
Kommode의 유일한 앨범의 수록곡. 완전 내 스타일이다.
+<Burning> by The Whitest Boys Alive
The Whitest Boys Alive의 1집 수록곡. KOC를 알게되고, 오여가 만든 밴드라고 해서 줄창 들었던 1집이 추억이다. KOC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곡들이 인상깊었지만, Kommode가 더 나의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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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충현
주연 이주영, 박형수
개봉 2015
길이 14분
관람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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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비의 감상 노트
최근 영화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워크샵에도 참가하면서 관련 전공자, 업계 종사자들과 대화 나눌 기회도 많아졌다. 업계 비전공자라는 피해의식이 없지 않았던 나는 지금이 기회다 싶어 쉬지 않고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했던 부분, 나에게 부족했던 조각들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이 알게 되는 만큼 두려움이 커지는 것일까? 쉽게 이야기가 써지지 않는다. 주인공이 골목길을 걸어가는 장면을 구상하면, 예전에는 그냥 훅훅 찍었을 것인데 지금은 조명, 사운드, 카메라 각도, 메이크업 등 생각해야 될 것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한 장면에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이야기를 끌어가는 추진력도 약해진다. 세상의 진실을 깨닫고 더 이상 소년일 수 없는 어른인 것 마냥 모든 것이 망설여진다. 그 망설임이 나의 유일한 장점인 다작을 한다는 점을 흐릿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정말 어엿한 영화감독으로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냥 맞지도 않은 옷을 입어 본인의 장점이 사라진 무색무취의 사람이 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영화관에 갔다. 가장 눈이 가는 영화를 예매해서 봤다. 영화는 <탑건 : 매버릭(Top gun : Meverick)>이었다.
영화는 너무 재밌었다. 뻔한 우정과 사랑, 그리고 해피엔딩으로 이루어진 클리셰였지만, 너무 흥미진진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 이게 영화였다. 사람들을 설레게 하고 흥분되게 하고 감동을 주는 이런 것. 이게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이유였고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였다. 꼭 의미가 담겨야 할 필요는 없다. 너무 영화가 어려워 해설 없이는 관객들이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들 필요도 없다. 카메라, 조명, 사운드, 미술, 메이크업 등에 너무 집착할 필요도 없다. 이 모든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표현해줄 수 있는 도구이지 도구에 사로잡혀서 내 이야기가 나아가지 못하면 안된다.
예술이라는 중2병에 빠져 괜한 겉멋에 허우적거릴 뻔했다. 반성하는 의미로 집으로 돌아와 이 단편을 다시 보았다. 역시 이야기가 재밌으니 또 처음보는 것 마냥 빠져든다. 이 재미에 영화를 만든다.
에이비의 영화 포스트잇
처녀를 원하는 원조교제남이 여고생과 모텔 방에 들어가 대화를 하다가 여고생이 처녀가 아님을 알고 금액을 깎으려 흥정한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파격적인 내용만큼이나 공개가 되자 마자 큰 파장을 일으켰다. 2016년 제 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입소문을 타서 그해 영화제들을 싹쓸이 하다시피 하더니, 4년이 지난 2019년에도 미쟝센 단편영화제에 초청작으로 선정될 만큼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을 보려면 영화제에 참석할 수 밖에 없었는데, 올해 왓챠에 공개가 되자 마자 다시 크게 화제가 되었다. (왓챠 나이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 감독의 <버드맨(Birdman)>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짧은 러닝타임에 적절한 반전과 구성으로 크게 호평을 받았다. 덕분에 이충현 감독은 바로 <콜>이라는 상업영화로 장편 데뷔를 했을 정도로 큰 인지도를 얻었다.
올해 하반기에 티빙에서 6부작으로 된 드라마로 장편화 되어 공개가 된다고 하는데 정말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다!
에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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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조 기자>
2부: '킬로 조의 첫 살인'
-24회-
차 문을 여니, 홍대의 화려하면서 시끄러운 소음과 인파가 용희를 뒤덮었다. 용희는 왼쪽 어깨에 걸친 가방끈을 왼손으로 꽉 쥐며 거리를 걸었다. 용희는 화려한 간판 조명 사이에서 ‘A 클럽’ 간판을 발견했다.
용희는 A클럽 앞, 카페에 들어가서 따뜻한 카페라테에 샷 추가한 커피 주문했다. 음료는 금방 나왔다. 용희는 커피의 따뜻한 온기를 손에 보관한 채, 2층으로 올라갔다. 용희는 유리창에 도서관 테이블처럼 한 줄로 설치된 테이블에 앉았다. 그곳에서는 유리창 너머로 A클럽의 입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용희가 알아본 바로는 일반 손님들이 오가는 입구는 지금 용희가 보는 곳이 전부였다. 물론, 뒤쪽으로 물품이 들어오거나 직원과 VIP들이 드나드는 입구도 따로 있지만 용희의 타겟인 유원종은 그 정도의 사람은 아니었다.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카페에도 커피를 마시는 사람보다는 잠시 술을 깨기 위해 들리는 사람들이 늘었다. 두 명 정도의 남자가 술에 취해 용희에게 같이 놀자고 했고, 용희는 딱 봐도 자기보다 5살은 어려 보이는 그들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술에 취한 그들은 당연히 한 번에 가지 않았고, 용희가 몇 번을 말해야 들었는데, 그때 용희는 가방에 숨겨놓은 총을 꺼내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오후 11시. 유리창 밖에도 점점 인사불성인 사람들이 늘어나고 술에 취해 커진 목소리가 창을 뚫고 들어왔다. 클럽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몸을 비틀거리며 나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용희는 화장실에서 가글하고 카페를 나섰다. 그리고 바로 A클럽의 입구로 들어갔다.
금요일 밤, 클럽 안은 정신이 없었다. 어느새 30대를 앞둬 이제 클럽보다는 포장마차나 바를 더 좋아하는 용희에게 시끄러운 클럽은 머리가 아팠다. 또, 하루종일 제대로 먹은 게 없어 더 힘들기도 했지만, 그 점이 용희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용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유원종이 어디에 있는지였다. 우선 그의 주머니 사정이 풍족하다는 걸 고려해서 룸 주변으로 갔다.
유원종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룸 주변에서 손에 맥주병을 든 채, 홀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용희는 유원종이 룸에서 약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잘 살폈다. 마약 전문가는 아니지만, 신입 때 사회부 기자로 경찰서를 출입하면서 약에 취한 사람들을 많이 봤고 어느 정도 공부를 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유원종은 몸을 많이 비틀거렸고, 가끔 손에 든 맥주병마저 떨어뜨릴 뻔하기도 했다. 그리고 걷다가 고개를 가누지 못해, 잠시 벽에서 쉬는 모습도 보였다. 만약 대마초를 했다면 운동능력이 저렇게까지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용희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유원종이 죽을 때만큼은 약에 취해있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뭐, 지금은 술에 더 많이 취해있지만...
+글소개: 29살 조 기자의 성장형 액-숀 활극.
최현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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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조 기자> 1부, prologue: '킬러 조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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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커피그림> 연재완료
+글소개: 29살 정민과 27살의 상민의 여름 날. 그리고 카페 ‘커피그림’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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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과일 season & work dokucit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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