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안녕하세요.”
유원종이 웃으며 대답하며 병을 건넸다. 건배하자는 제스쳐인데, 용희의 손에는 술이 없었다.
“어, 술이 없으시네요?”
유원종이 말했다.
“네, 이제 막 들어와서.”
용희가 말했다. 말하면서 용희는 급하게 알리바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외로워서 혼자 클럽에 왔다. 뭐 이런저런 스트레스도 있고. 직업은... 기자와 그나마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TV 다큐멘터리 취재작가. 나이는 양심이 찔리긴 하지만 25살의 유원종과 어울려야 하지 스물여섯... 아니 스물일곱. 전공은 신문방송학과. 대학은.. 에이 물어보겠어?’
“그래요? 누구랑 왔어요?” 유원종이 물었다. 용희는 준비된 답변인 ‘혼자’라고 했다. 그러자 유원종이 엄지를 들어 올리며 “뭐야, 멋있어.”라고 말했다. 취기가 있었지만, 아직 용희가 원하는 정도의 취기는 아니었다.
유원종은 자기네 룸에 술이 많다며 같이 가서 놀자고 했지만, 용희는 답답하다는 투로 핑계를 댔다. “안 그래도 지금 사무실에서 야근하다 와서, 클럽에서까지 좁은 곳에 들어가 있기 싫은데요.” 그러자 유원종은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고, 대신 용희는 바로 가서 맥주를 주문했다. “술이나 마셔요.”
술에 많이 단련되어있었다고 생각했던 용희도 안주 없이 거의 빈 거나 다름없는 속에 술이 들어가니 금방 취기가 올랐다. 소주도 아니라 겨우 맥주임에도. 그나마 다행인 건 유원종이 취해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매일같이 술을 마셔서 약해진 건지, 원래 약한 건지. 용희는 여기서 유원종이 더 취하면 뒷 일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희는 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쳤다.
“우리 나갈까?”
용희가 클럽의 소음 뚫고 말을 전하기 위해 유원종의 귀에 입을 대고 말했다. 유원종은 단순했다. 바로 반응이 왔다. 취기에 의미없는 웃음이 가득했던 유원종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진지함이 자리잡았다.
“지, 지금?”
“응, 말했잖아. 나 외로워서 클럽에 온 거라고.”
유원종은 고민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고 있었다. 용희는 흥분을 자제하고 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은 다음 말과 다음 행동이 불러올 다음 일에 대해 꾸준히 계산하는 것뿐이었다.
유원종이 자신의 몸을 더듬더니 몸을 돌렸다. 그래서 용희가 무슨 일이냐 묻자, “아니, 잠깐 나 룸에 좀 다녀올게. 거기에 지갑이랑 카드...” 라고 말했다. 유원종이 룸에 갔다가 혹시 친구들이 용희의 존재를 알아버리면, 아니 얼굴이라도 기억한다면.....
“친구들에게 챙겨달라고 하면 안 돼? 돈은 나도 있어.”
용희는 전 남자친구들에게도 하지 않았던 말투와 호흡 그리고 눈빛으로 유원종에게 부탁했다. 어느새 용희도 자신의 행동을 즐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