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희는 전 남자친구들에게도 하지 않았던 말투와 호흡 그리고 눈빛으로 유원종에게 부탁했다. 어느새 용희도 자신의 행동을 즐기기 시작했다.
클럽을 나온 두 사람은 한동안 의미 없이 홍대 거리를 걸었다. 금요일 밤이니 거리에도 인파가 많았고 소음도 꽤 컸지만, 조금 전의 클럽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용희는 거리에서 유원종을 마주하는 것이 마치 옷을 벗고 맨몸으로 서 있는 것처럼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 어디 아는 데 있어?”
유원종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어디?”
용희가 물었다.
“어디긴, 가야지. 안 갈 거야?”
“아, 응응. 난 상관없어. 너 아는 데 있어?”
용희는 유원종의 말을, 그리고 클럽에서 만난 두 남녀가 다음 할 행동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아 씨발,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클럽에서 만난 남자가 저 새끼라니...’ 용희는 자기 생각과 다르게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생각했다. 좀 놀아둘걸. 물론, 심장이 뛰는 건 꼭 남녀 사이의 미묘함 때문은 아니다.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긴장감, 일이 생각대로 잘 풀려야 한다는 조바심, 혹시나 실수했을 때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다양한 이유가 뒤섞여있었다.
용희의 시선에는 골목 사이사이에 모텔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유원종은 그런 골목에 시선을 주지 않고 앞으로만 걸었다. 용희는 거리의 끝을 확인했다. 홍대입구역. 번화가다. 저 거리로 나가면 일이 어려워진다. 다급해진 용희가 말을 꺼냈다.
“어디로 가게?”
“응? 호텔 가려고.”
“...호텔까지는 안가도 괜찮은데....” 용희가 말하자, 유원종이 웃었다. “걱정하지 마, 나 카드 있어. 혹시 몰라서 스마트폰 케이스에 넣어놨는데, 이제야 생각났네.”
“아니, 그런게 아니라.... 난 저런 곳도 좋아서...”
용희가 가리킨 건, 바로 옆 좁은 골목. 겉만 번지르르하게 리모델링 했지, 30년도 더 오래 전에 지어져서 대를 이어 이용하는 느낌을 주는 낡은 모텔이다.
“뭐야, 그렇게 급해? 아니면 원래 저런 곳 좋아하는 거야?” 유원종이 그 모텔을 보고 말했다. “누나, 아까 클럽에 있을 때랑은 다르게 귀엽네.”
용희는 유원종의 ‘누나’라는 말을 듣고 속이 역류할 뻔 했다. 먹은 게 없어 다행이었다. 용희는 자신이 밝히는 여자나 이상한 취향을 가진 여자로 보이는 게 짜증나 미칠 것 같았지만, 이것도 곧이었다.
“응. 저런 곳은 싫어?” 용희가 묻자 “아니, 오히려 좋아.”라며 유원종이 말했다.
둘은 골목의 입구에 들어섰다. 골목은 어둡기만 한 게 아니라 좁아서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원종이 앞서 걸었고, 용희가 뒤따라갔다. 길을 걸으면서 용희는 기억을 더듬어 가방 안에 총이 어떤 모양으로 있는지 얼른 생각했다.
“뭐해, 얼른 오지 않고.”
용희가 잠시 주춤거리자, 앞서가던 유원종이 물었다.
“구두가 좀 이상해서. 잠깐만.” 용희가 말했다. 그러자 유원종은 “어차피 곧 벗을 건데.. 알았어.”라고 대답했고, 용희는 구두를 만지는 척, 쪼그려 앉았다. 그러자 어깨에 멘 방이 구두 옆에 위치했다. 용희는 귀를 열어 골목을 오가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지금 골목에는 두 사람밖에 없었다.
“뭐야, 오래 걸려?”
유원종이 조급해하며 물었다. 바깥공기를 맡고 길을 좀 걸으니 술이 많이 깬 것 같다. 용희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가방에 들어간 손이 PPK 앞에 소음기 장착을 완료했다.
“다 했어.”
용희가 일어났다. 유원종은 다시 몸을 돌려 앞서 걸었다.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