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23
숙소를 나섰다. 뛰는 둥 하며 주변을 돌아볼 심산이었다. 숙소가 도심이라 마땅히 뛸 곳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유흥 집약의 도심 번화가는 아침이야말로 한산했다. 설날인가 싶을 정도로 문 연 곳이 드물었다. 음악을 틀려고 핸드폰을 꺼내니 배터리가 1퍼센트였다. 지갑을 챙겨 다행이었다. 둘러보다 괜찮은 카페를 만나면 들어가서 충전하면 그만이었다. 어젯밤 우연히 봐둔 괜찮은 카페들이 있었다. 감각이 지시하는 대로 카페가 있던 동네로 무작정 뛰었다. 길을 잃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보냈다. 그 카페 동네는 찾지 못했다. 간신히 숙소로 돌아왔다. 현재 여행 중이다. 대구다. 홀로 왔다.
‘나의 피는 라멘으로 되어있어’ 점심 먹은 곳이다. 라멘집이다. 면발이 오동통하고 마늘향이 강해서 일본 라멘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맛은 좋았다. 푸짐한 양과 달리 가격은 만 원이었다. 물가가 싸긴 하다. 가게를 나와 마스크를 쓰니 마늘향이 가득했다. 커피가 필요했다. 카페 가는 길, 반대편에서 손을 꼭 붙잡은 할머니와 손자가 걸어왔다. 손자는 20대 중반 정도로 건장했다. 할머니는 평생 밭일을 했는지 허리가 70도는 굽어있었다. 세대를 건너뛴 생명력의 격차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손자 손을 잡고 앞으로 가는 할머니의 기세는 손자보다 뿜뿜했다.
나도 할머니와 걷던 때가 있었다. 할머니는 평생 술을 드셨다. 그러다 60대 때 중풍을 맞았다. 이후 할머니는 여생을 전신 좌측이 마비된 채 살았다. 스스로 걷기 힘들었다. 주말이 되면 그런 할머니 손을 잡고 부축해서 성당을 가는 것이 손자의 도리였다. 할머니는 중풍 이전 평생을 불자로 살았다. 불심 가득했다. 아직도 선명하다. 이천이 시로 승격되던 날, 할머니는 분홍 한복을 차려 입고 스님들과 함께 시내를 행렬했다. 그런 할머니가 성당에 나갔다. 종교도 할머니 앞에선 실용이냐 아니냐로 바뀔 수 있는 선택이었다. 할머니는 성당에 나가면 알 수 없는 힘이 아픈 몸이 낫게 할 것이라 믿었다. 산에 있는 절과 달리 걸어갈 수 있던 천주교는 할머니에게 실용적이었다. 교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실용을 넘어 세속적이었다. 작은 아빠 말로는 할아버지가 신문을 읽고 있으면 할머니가 ‘신문 보면 돈 나오냐‘며 소리치곤했단다. 할머니도 참 할머니다.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인 게 할머니가 그럴 때면 ‘허허허’였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인자하고 선비 그 자체인 ‘허허허맨’ 할아버지였다. 할머니는 며느리들에게 콕콕 박히는 미운 말도 많이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성품이 넉넉지 못하고 잇속만 따지는 할머니인지라 술친구가 아니고서야 할머니는 사회 어디에서도 반기지 않을 캐릭터다. 근데 그런 할머니가 나는 몹시 그립다, 보고 싶다. 할머니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을 온전히 다 주었다. 누군가가 할머니 대해 얘기할 때 나는 구태여 상상할 필요가 없다. 그 따뜻함과 온전함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안다. 한 손자의 할머니로서 우리 할머니는 정말이지 최고였다. 든든한 언덕이었다. 할머니의 죽음은 그런 언덕 하나가 사라짐을 의미했다. 아직 하나 남았지만.
카페에 도착했다. 일할까 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산맥 같은 일이라 관뒀다. 요즘 푹 빠진 책이 있다. <언어의 무지개>다. (기회가 되면 제대로 소개할까 싶다. 지금은 누구에게 소개할 정도로 소화할 깜냥이 안된다. 나 혼자 먹기 급급하다.) 신나게 읽고 나오니 오후 5시 정도 됐다. 뭔가 먹어둘까 하다가 숙소로 갔다. 바로 밑 편의점에서 제주우유로 만들어서 부드럽다는 생크림 빵과 초코 우유, 과자 하나를 샀다. 5분도 안 돼서 다 먹고 침대에 누워서 쉬었다. 맛집을 안가고 싶은 것 아니지만 딱히 가고 싶은 것도 아니어서 그냥 그렇게 끼니를 때웠다. 이따 저녁에 기회가 되면 제대로 먹을 생각이었다. 카페에서 그나마 검색해둔 것은 위스키 바였다.
숙소를 나와 위스키 바로 향했다. 내내 귀에 꽂아둔 것은 <Twilight Time>이었다. 이것만 들었다. (안타까운 건 에어팟 왼쪽을 얼마 전 강아지 산책을 나가다 엘리베이터 문틈 사이로 보내주고 말았다. 그 뒤로 이상한 고집이 생겨서 좌측을 안 사고 있다. ‘안 그래도 왼쪽 귀가 안 좋은데 청력을 보호하자’, ‘몇 개월째 지갑이 왜소한데 올해 흑자가 되면 사자’, ‘왼쪽 이어폰의 결핍이 새로운 뭔가를 보여주지 않을까’라는 온갖 핑계를 대며 안 사고 있다. 그냥 똥고집이다. 신호를 기다릴 땐 왼쪽 귀를 손으로 막기도 하며 줄기차게 듣고 있다.) 이 노래의 가사가 여행의 상태와 어울리지 않아서 연주곡으로 바꿔 들었다. 아주 좋다. 메인 악기는 클라리넷인 것 같은데 역시 배워볼 만한 악기다. 이번 생에 할 일이 아주 태산이다. 취미생활과 인생 탐험이 직업인 19세기 후반 서양의 귀족으로 태어났어야 했다.
가려던 위스키 바는 밖에서 보니 테이블에 앉아 요리와 술을 먹는 레스토랑이었다. 혼자 앉을 자리가 안 보였다. 들어갈까 말까 맴돌다가 건너편 다른 바에 왔다. LP 만으로 음악을 틀고 내 몸뚱이보다 큰 스피커 두 통이 좌우로 있었다. 스피커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스피커는 덩치가 클수록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안다. 이건 물리법칙이다. 이 스피커로 <Twilight Time>을 틀면 얼마나 좋을까.
일상이 건강할 때 여행은 삶의 활기가 되지만, 일상이 나약할 때 여행은 불안의 확장이 된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일상을 진단하는 괜찮은 도구인 것 같다. 특히 홀로 여행이 그렇다. 과거도 미래도 없는 그곳엔 오직 현재만 존재한다. 돌아갈 일상이 건강하면 낯섬은 새로움이고 방황은 모험이다. 그러나 돌아갈 곳의 일상이 부재하거나 부실하다고 느껴지며 낯섬은 두려움이고 방황은 위기다. 나에게 이번 여행은 그 경계 어딘가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서울에서 내 일상은 나약함을 견딜 만큼만 건강한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