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스즈메의문단속>을예매하다가 <소울메이트>가눈에들어왔다. 보려던영화였다. 터치하니그밑에무대인사라는챕터가있었다. 출연배우와감독이상영전이나후에스크린앞에등장해서 10분정도관객에게인사하는작은이벤트였다. 관람권가격이더비싼것도아니었다. 새로운경험이다싶어 적절한 날로 예매했다. 그게오늘이었다.
영화를 보면 다른세계로 빨려들어가 등장인물의정서를체험하게 된다. 관람 동안그세계에살게된다. 어떤 영화는 관람 후에도 한동안 현실을 흔든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무대인사는회의적이었다. 영화가끝나자마자(끝난적도없다) '이건그냥콘텐츠고상품입니다'라고말하는것같았다.
영화가남긴여운이아직현실에번져있을때이를닦아내는건나의일상이고싶지타인으로부터일단락되고싶진않다. 그것도그영화를만든사람들로부터는더욱아니다. 아쉽다. 딱 2분만기다렸다가크레디트가다끝나고무대인사가시작됐어도내가이정도까지삐치진않았을것이다. 뭐가그리바쁜가현대사회. 그래도하나배웠다. 무대인사를보려거든상영전에하는걸로표를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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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큐 season & work
1. 을지로 도시음악
You Came Into My Life by Paulinho Da Costa
2. 단편극장
추락 <블랙미러> 시리즈
을지로 도시음악
You Came Into My Life
by Paulinho Da Costa
양의아주아주 주관적인 일상
내가 누군가를 곁에 둘 자격이 있는가? 누군가를 내 곁에 두기 위해 나라는 사람은 어디까지 내어줄 수 있는가? 나를 잃어가면서 곁에 누군가를 두어야하는가? 관계를 소유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보통의 나라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이미 위의 질문에 수도 없이 다른 질문을 만들어보고 나름의 답을 내려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누군가가 내 세상으로 듬뿍 들어올 때면, 위의 모든 질문들이 뒤흔들린다. 그럴 때면 그 뒤흔들려지는 세계를 열심히 설명한다. 그 과정은 썩 유쾌하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내 세계로 손님이 왔고 그 손님을 극진히 모셔야 할 수밖에. 하지만 내 세계는 뒤흔들릴 뿐 그 모양을 바꾸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설명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는다.
그래서 반대로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잃지 않고 나대로 있어도,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내 옆에 남아 있는 손님의 가치는 매우 특별하다. 나는 별다른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상대는 감사해하고, 나는 그 마음에 다시 감사해하는 구조. 이런 구조가 잡히면 참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내 주변에 보통 남아있는 사람은 대부분 이런 성격이라 더 그렇게 생각할지도.)
뒤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고통스럽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그냥 감내하고 고마워하는 것 뿐. 반대로 내가 다른 세계에 들어간다 해도 그 사람이 고통스럽게 뒤흔들 일은 없을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다.
양의 아주 아주 짧은 인스턴트 지식
Paulinho Da Costa. 48년생 브라질 출신의 퍼커셔니스트. 퍼커션은 손으로 두드리다 라는 뜻이고, 보통 타악기를 총칭하는 단어다. 파울리뉴아저씨도 손으로 칠 수 있는 ‘무언가’(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그렇다보니 연주했던 악기들이 수십 수백 가지가 된다.
특히나 타악기 자체가 메인 악기는 아니기에 세션맨으로 활동을 아주 활발히 했는데 70-80년대 당시 유행하던 남미, 아프리카 사운드에 가장 인기 있는 퍼커셔니스트였다. 함께 작업한 아티스트 약 900명, 연주 했던 악기들 약 200여종.
몇년 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처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기술이 발달하고 있는 요즘이다. 너무 빠르게 발전하고 변해가는 사회라 그런지 새해가 되면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익히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많다. 그런데 혹시 이러한 기술 발전이 마약과도 같다면? 미디어와 정보기술의 발전을 인간의 윤리관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선을 두는 핸드폰, TV, 컴퓨터가 비추는 수많은 미디어 매채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영국의 풍자 코미디언인 찰리 브루커가 제작한 <블랙미러> 시리즈는 이런 사회적인 현상에 주목했다. 2011년부터 공개된 이 시리즈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어 어느덧 시즌 5를 넘어 시즌 6가 제작 중이다. 이번 주부터 6주 동안 이 발칙하고 염세적인 시리즈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 첫 시작 답게 시즌 1 첫 에피소드부터 이야기해보겠다.
에이비의 일상 노트
최근에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많이 늘었다. 본래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크게 관리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디어 사업 종사자라 나름 잘 관리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팔로워 수가 증가하니 뭔가 얼떨떨했다. 내 SNS 활동에 대한 변화도 일어났다. 가끔 새벽에 감성적이 되어 충동적으로 올리는 감정이나 생각들을 업로드하는 것을 자제하게 되었다. SNS를 나의 활동이나 작품을 알리는 아카이브 모음집으로 이용하겠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타인의 시선을 좀 더 의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격은 5세 이전에 기본적인 구조가 형성이 된다고 한다. 그 뒤로는 가정이나 사회적인 규범을 통해서 본인의 인격을 누르고 사회적 인격을 구축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회적 인격으로 일상을 보낸다. 그 안의 진정한 본인의 인격, 내면의 그림자는 사회적 인격 때문에 억압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두 인격의 갭이 커지게 되면 혼란이 오고 불편한 감정이 형성되어 이 감정들이 흘러나오게 된다. 그런 감정이 분출되는 곳 중 하나가 SNS라 생각한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SNS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혼자 있기 싫은 걸까, 아니면 눈에 띄게 혼자이고 싶은 걸까.’
가끔 혼자 되내이는 노래 가사이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삶이 더불어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가능할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나 역시 많은 사람들로부터 별점을 받고 있고 나 또한 별점을 주고 있다. 결국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특히 미디어 업계 종사자인 나에게는 필연적인 것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것도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함이다. 하지만 결국 연기는 끝난다고 하는 것처럼 그 중심을 잡기란 참 쉽지 않다. 결국 단단한 나를 만들어야 한다.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끄는 삶을 위해.
에이비의 영화 포스트잇
<오만과 편견> 감독인 조 라이트가 연출한 작품으로 타인이 매기는 평점만이 인간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어버린 세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대 사회의 SNS 문화를 풍자한 작품이다. (당시 중국의 세서미 크레딧이 큰 화제였기에 중국을 겨냥한 작품이었다는 추측도 많다.)
한국어로는 ‘추락’이라고 명시 되어 있어 원제가 “Fall”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영제는 “Nosedive”이다. 두 단어 모두 사전적 의미로는 추락을 뜻한다. 하지만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의 추락을 의미하는 “Fall”보다는 전투기가 지상에 있는 타겟을 향해 아주 빠른 속도로 다가가는 비행인 “Nosedive”라는 단어를 통해 SNS 평점이 급락하여 사회적으로 추락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역설적인 의미를 함축했다.
어떻게 보면 <블랙미러> 시리즈 중 몇 안되는 해피 엔딩 에피소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