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배는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문 다음, 용희에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라고 물었다. 용희는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라이터로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이 선배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손바닥에 몇 번 두들겨서 한 개비를 꺼냈다. 두 사람은 불을 나눠 붙였다.
“수진 씨에 연락 온 거 없었어요?”
용희는 담배를 한 모금 삼킨 다음, 연기와 함께 말을 내뱉었다.
“있었어.”
이 선배가 말했다. 용희는 선배의 아무렇지 않은 표정에 온몸에 들어있던 긴장의 김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게 다예요?” 용희가 말했다. 선배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뭐라고 왔는데요? 아니, 읽어는 봤어요?” 용희가 재차 물었다. 그러자 이 선배는 한숨을 쉬고 난 다음, 말을 시작했다.
“처음에 한두 번 왔을 때는 읽었어.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고 연락했는지는 모르겠고. 솔직히, 네가 준 자료에 적힌 수진 씨 변호사와 가족들 전화번호는 봤지만, 연락은 하지 않았거든. 귀찮았어. 너도 알잖아.” 선배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손에 들고 있던 주간 고려를 용희에게 건넸다. “봐봐, 거기 기사에 내 이름이 들어간 게 몇 개인지, 그리고 이름만 다르고 사실은 내가 쓴 게 몇 개인지. 아니면 포털사이트에 내 이름 쳐봐. 요즘에는 다 나오더라.”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언론사에 소속된 대부분의 기자는 월급쟁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용희도 뭐 같은 부장이 있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지만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오피스텔 전세대출 때문이다. 내가 왜 이런 직업을 꿈꿨지? 라는 후회라 매분, 매초 들지만 그런데도 매일같이 출근하는 이유는 카드 할부 값이다. 그런 월급쟁이 기자 중에서도 이 선배는 달랐다. 기자라기보다는 직장인에 더 가까웠다.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기자들은 회사가 주는 월급을 받아먹고 먹고산다. 이 당연한 원칙을 하늘처럼 여기는 게 바로 이 선배였다. 다른 기자들은 이 원칙을 어기는 것이 바로 ‘기자’라는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툭하면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았다. 용희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있었다. 결국, 남들이 쓰기 싫은 기사, 데스크랑 기자랑 싸워서 혼자 붕 떠버린 버려진 기사들을 떠맡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게 이용호 선배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선배가 앞장서서 데스크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작성하지 않았다. 이렇게 중간에 버려진 사건들은 돌고 돌아 결국에는 이 선배에게 오게 된 것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선배는 폭탄처리반이 된 것이고, 대부분의 기자는 자신들이 일명 ‘곤조’를 부릴 때 믿을 구석이 되어주는 이 선배에게 고마움을 갖고 있었다. 그 고마움을 자주 까먹어서 문제이긴 하지만...
“아니, 선배. 그게 아니라...”
이 선배의 투정에 아차 싶은 용희는 급하게 말투를 바꿔보았지만, 선배는 듣지 않았다.
“씨발. 지들만 기자야. 지들만 바쁘고.”
이 선배는 혼잣말하고 나서 다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는데, 용희가 선배의 라이터를 뺏은 다음에 불을 붙여주었다. 이 선배는 담배를 피우면서 용희의 얼굴을 쳐다봤다.
“야, 그리고 너는 왜 나한테만 그러냐? 주간 고려가 아니라, 일간... 아니지, 고려일보도 있고, 유튜브도 있고, TV 기자들도 나랑 똑같이 다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