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호기심 많고 말 많은 대학생(이하 호만대)님. 양입니다.
여행을 가신다고요. 진짜 너무 부럽습니다. 게다가 혼자 해외로 자유여행을 가신다고요. 참나... 도저히 배알이 꼴려서 답장 않을까 생각했는데, 호만대님이 편지에 던진 질문들에 답을 하고 싶어지는 바람에 꾹 참고 답장을 써내려가봅니다.
우선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 내가 혼자 자유여행을 간 게 언제인지 기억을 더듬어 봤습니다. (10년도 더 된 일이니 정말 까마득하네요.) 앞으로 다시는 할 수 없는 종류의 여행이었는데, 3개월간 동행하는 사람 없이 유럽에 체류한 (정말 '여행'같지 않았기 때문에 체류라 표현하겠습니다.) 경험이 떠오릅니다. 길었던 만큼 꽤 많은 걸 경험했고, 꽤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체류였습니다.
호만대님의 질문으로 들어가 '여행에서 얻게 되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자면, '일상을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위에 말한 여행 중에 느낀점도 많고, 아주 힘들었던 일도 아주 행복했던 일도 많습니다. 모두 나의 성장에 영향을 주었으니 기억에 남습니다만,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지난 여행을 돌아보는 과정이 저에겐 더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당시 서울로 돌아와 오랜만에 친구들과 한강공원에서 맥주를 마셨는데요. 한강이 정말 말도 안되게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럽에서 아름다운 장면을 수십 군데를 보고 돌아온 직후였는데도 말입니다. 아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서울의 한강이 런던의 템스강 보다 이뻤습니다. 맥주를 다 마셔갈 때 쯤에는 여행에서 보낸 행복감 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더 아름답고 특별하다고 감지해야만 우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여행을 '일상의 고통에서 잠시 벗어나 쉰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일상을 더 소중하게 만들기 위해 여행을 가야만 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여행이란 건 누군가에게는 지독히 평범한 일상으로 가는 거기도 하고요.
호만대님. 편지를 다 쓰고 나니 답변이 좀 엉망진창이었던 것 같습니다. 질문하면서 원하는 답도 있었을 텐데 죄송스럽네요. 여행 무사히 잘 다녀오시고, 그 여행에서 아름다운 장면들을 많이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돌아온 일상에서 더 아름다운 장면이 있길 바랍니다.
해외에서 이번 편지를 받을 예정이라니.
참나. 일상은 개뿔 너무 부럽네요! 나도 너무 가고싶네!
그럼 호만대님 또 편지 써 주세요. 고맙습니다.
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