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왜?' 라는 질문을 받고 숨이 턱턱 막힌 경험을 했다. 쉽게 대답하면 질문한 사람에게 설명이 잘 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대답을 회피하니 대화가 어려워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장이 나버려서 그냥 '왜?'라는 질문 금지를 선언했다.
'왜?' 라는 질문은 매우 열려있는 질문이기 때문에 '예/아니오'로 대답할 수 없고 반드시 그 '왜'를 설명해야만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무언가 고민을 해야만 할 때, 그러니까 공부를 할 때나 글을 써야 하거나 일을 할 때에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으로써 '왜?'라는 질문은 아주 휼륭한 질문이 될 수 있다. 어떤 현상의 본질로 들어갈 수 있는 첫 질문이기도 하고, 설명해내야만 대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왜?'라는 질문에 '왜' 숨이 턱턱 막혔을까? 이딴 질문을 하고 있는 것 부터가 나는 질문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숨이 턱턱 막혔던 그 당시로 돌아가 왜 그랬지? 생각해보니 감정과 관련된 주제에서 '왜?'라는 질문을 받아서 문제였다.
내가 표현한 감정에 대해 '왜?'라고 묻는다면 감정과 상황에 따라 수천 가지 다른 대답을 할 수도 있고 수만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지극히 주관적인 내 감정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에 왜냐고 물은 사람에게는 납득 할만한 대답이 아닐 수도 있다. 관계에있어서 각자가 가진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의 영역을 알맞게 합의 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치만 웃겨서 웃는 사람에게 '왜 웃어?' '뭐가 웃겨?' 라는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면 짜증나지 않는가. 개그를 설명하는 순간 죽은 개그가 되는 것 처럼 말이다. 자매품으로 울고 있는 사람에게 '왜 울어?' 가 있겠다. (T는 이래서 안되는 건가...)
그러니까 '왜?' 라는 질문은 적당히 앞뒤 살펴보고 깜빡이 키고 시전하자. 왜 사람을 만날 때 희노애락 코드가 비슷한 사람과 만나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이쯤 되니 왜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
유명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자석은 왜 서로 밀어내거나 서로 당기나요?' 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내용이 생각난다. 이 내용을 '사람의 감정'으로 치환해서 생각하면 우리가 숨이 턱턱 막혔던 이유를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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