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견주님. 양입니다.
편지가 닿을 즈음에는 멍멍이가 건강할지 걱정부터 되네요. 부디 조금이라도 잠시라도 더 곁에 있어 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저희 어머니가 매우 아프셨던 때가 기억이 나는데요. 그때 그 헤어짐의 두려움이 생각나 조금이나마 공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뒤늦게 봤습니다. 정신없고 유쾌하고 현란한 영상들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누군가는 유하게 삶을 살아가길 바라고, 누군가는 신경질적으로 삶을 살고, 누군가는 자유로움으로 삶을 살아갑니다. 각자가 사는 모양은 너무나도 다르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 다름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떠나지 않고 그냥 곁에 있어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저는 아직 지독히 슬픈 이별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단순하게 이별을 슬프다고 여기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지독하게 슬픈 이별이 될 만큼 끈끈한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주변인들을 너무 깊게 사랑하지 않고요. 결혼 또한 최대한 먼 일로 여깁니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이유도 그렇고요. 저는 아주 겁쟁이라 슬픈 이별을 감당할 용기가 없거든요.
대신에 누가 옆에 와도 찔릴 일 없이 아주 둥그스름한 모양으로 살아갑니다. 아 왔구나. 아 가는구나. 응 그래 그래. 같은 느낌으로요. 이런 저의 삶의 모양이 마음에 드는 사람은 곁에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나가고 그런 아주 느슨한 태도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헤어짐의 무게도 느슨하게 만드는 게 제가 싸우는 방법인 것 같아요.
견주님이 극도로 두려워하는 이별이 있다는 것은 저 같은 놈과는 다르게 넘치게 사랑하고 주변에 끈끈한 관계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겠죠. 견주님의 삶을 살아가는 모양이 어떤지 조금은 짐작이 갑니다. 언젠가 필연적으로 헤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멍멍이를 맘껏 안아 줄 수 있는 그 사랑과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을 줌과 동시에 가장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결혼을 선택한 그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멍멍이의 아쉬울 만큼 짧은 삶의 모양도, 반려자의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모양도, 주변 사람들의 삐죽 빼죽한 삶의 모양도 잘 곁에 두세요. 그 과정에서 조금만 아프고, 사랑과 행복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항상 힘내시고요.
양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