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첫 편지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시다시피 새해 첫 날을 일본 도쿄에서 보냈습니다. 생각보다 고된 여정이었는데요. 욕심을 부려 급하게 다녀온 티가 팍팍 났습니다. 이렇게 길게 쉬는 것이 -그래봤자 1/1 하루 쉰- 앞으로 쉽지 않을 것 같아서 12/30에 일본행을 급하게 결정하고 모든일이 진행 됐으니까요. 게다가 1/1 새벽에 가게 마감을 하고 공항으로 출발해서 1/4 입국하자 마자 캐리어를 끌고 가게로 가서 오픈했으니 말 다했죠. 죽겠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으로 처음 도쿄에 갔습니다. 일본을 자주 가진 않았지만 갔던 곳은 전부 큐슈였거든요. 하지만 주변 지인들과 편지 덕분에 초행임에도 도쿄의 정말 많은 곳을 추천 받았습니다. 만, 일본은 1/1 부터 1/2 까지는 대부분 쉬는 것 같더라고요. 1/3 도 듬성듬성 가게들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정말 사람도 없고 영업중인 가게도 없어서 하루 종일 걷기만 했던 것 같아요.
(추천해주신 곳들은 전부 구글맵에 핀을 찍어 두었으니 다음 도쿄에 갈 때 참고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동업자이자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신 박석용씨와 함께 간 덕분에 연휴 기간이라 조용한 도쿄에서도 여러모로 알차게 보냈다는 것입니다. 도쿄에서 지내는 친구들도 만나고 잘 알려지지 않은 맛집도 갔거든요. 또 다행이었던 것은 대형 쇼핑몰이 닫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저의 도쿄행 유일 목적이었던 '음반 구매'는 나름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여러 레코드 샵에서 무려 20장의 중고 음반을 염가에 구매했습니다. 저에게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아마 50장도 샀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전체적인 여행의 분위기는 이러했고요.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을 이야기하자면, 저의 설렘이 굉장히 줄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평소 일상에서는 설렘을 느끼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이번 여행을 통해 어떤 점에서 내가 설레일까 가슴이 두근거릴까 기대했었는데요. 웬걸, 일본에 도착하고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별 감흥이 오질 않았습니다.
'즐겁지 않다' 와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분명 즐거웠거든요. 벌벌 떨면서 -누가 도쿄 안춥다 그랬냐 나와라- 하루에 2만보씩 걸어다니고, 열심히 구글맵 보면서 찾아가면 휴뮤인 가게들을 수도 없이 만나면서 지치고 힘들고 싫기도 했을텐데, 여행이니까 즐겁게 넘어갈 수 있었거든요.
나의 설렘이, 감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잠시나마 느끼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이것이 초연해지고 단단해진 것의 부작용일까요. 정신적으로 힘듬을 극복하기 위해 슬픔도 크게 느끼지 않는 대신 즐거움도 크게 느끼지 않는 것. 감정의 높낮이가 중간 어딘가에서 부유하는 그런 상태.
물론 저는 그런 상태를 좋아하긴 합니다. 일상에서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즐거워하지도 않으려고 노력하거든요. 그 습관이 여행에서 확 티가 났던 것 같아요. 여행에서는 즐거움, 행복, 설렘을 기대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더욱 기분이 이상했던 걸지도요.
님의 설렘은 좀 안녕하신가요. 언제 가장 설레고 언제 가장 가슴이 뛰시나요. 혹은 얼마나 그 감정을 기대하시나요. 기대한 만큼 그 감정을 채울 수 있나요.
고작 3.4초 도쿄에 다녀오고서는 말이 너무 길었네요.
올 한해도 잘 부탁드리면서 다시 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양 드림.
ps.
비행기를 타기 전에 오프라인으로 저장한 콘텐츠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공항에서 급하게 애플 뮤직에서 앨범 몇개를 저장했습니다. 하나는 Ronnie Laws의 [Fever]라는 앨범이고, 하나는 Quincy Jones의 [Q's Jook Joint]라는 앨범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비행 시간을 잠으로 채웠지만 이 앨범 두장 덕분에 자다가도 기분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 편지에서는 그 중 한 곡을 추천드렸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좋은 음악을 만나면 조금은 설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