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양입니다.
요즘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에 빠졌습니다. 드라마 <미생>을 보고 난 뒤 원작으로 꼭 봐야지 생각했던 것을 미루고 미루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된 만화책으로 이제야 다 보게 됐습니다. 몇번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 '아 명작이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담백한걸 좋아합니다. 사람도 음식도 영화도 글도 음악도 화려게 치장된 것 보다는 담백한 편을 좋아합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담백한 것은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본연의 맛이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글에 있어서 담백한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글은 보통 아주 현실적이고 그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어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미생>은 드라마도 그랬지만 원작도 정말 담백한 편이었습니다. 특히나 '원인터네셔널'(작중 배경이 되는 기업) 처럼 체계적인 조직에 다녀본적은 없지만 회사원의 현실적인 우여곡절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 매력입니다. 그리고 여러 인간 군상과 내 주변에도 일어날 법한 상황을 풀어내고 매듭지어가는 과정이 작위적이지 않고, 그렇다보니 생각할 거리가 많아집니다. '나라면 그럴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물론 진짜 직장생활에 비해 진짜 인생에 비해 <미생>은 분명 판타지소설같은 면이 있을 겁니다. 평생 바둑만 뒀던 고졸 주인공이 대기업에 들어가 활약하는 모습은 일상에서 쉽게 그려지는 상황은 아니니까요. 말도 안되게 좋은(혹은 성숙한) 직장상사를 만나는 것도요.
주인공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다양한 업무와 복잡한 사람과의 관계를 바둑으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주인공은 그날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보'로 기록하면서까지 치열하게 수 싸움을 합니다. 전략의 영역으로도 이해가 되고 성찰의 영역으로도 이해가 됩니다.
바둑이라는 게임의 심오함도 한 몫 한것 같습니다.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표현하는 그런 철학적인 생각들이 쉽게 떠오르기도 하니까요. 그러니까 '어느 한 영역에서 진지하고 깊게 파고들어서 경지에 오르면 전혀 다른 영역을 이해하는 능력이 생긴다.'는 지점에서 <미생>이 정말 재밌었습니다.
보잘 것 없고 엉망진창이었던 저의 대학 생활에서도 그나마 글을 전공한 것이 참 다행이다라고 느끼는 것도 그 지점에 있습니다. 제가 결코 어느 높은 경지에 오르진 않았지만 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길' 정도는 찾았던 것 같거든요.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생각을 문자로 옮겨 적는 일이고 그 문자들을 읽기 좋게 배열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읽기 좋게 문자를 배열하는 것은 비교적 짧은시간에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의 영역이지만 '생각'만큼은 참 정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많은 글을 읽어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전공이었기 때문에 해야만 해서 했던 일인 것 같고요. 그 '생각 정리 기술'이 살아가는 데에 일을 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많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님의 일은 어떤가요? 힘들어 죽겠는데 괜한 질문을 던진 것 같기도 합니다만, 너무 힘들 때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이해해보는 것도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참 복잡해 보이지만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고 개인의 영역에서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설령 그게 오해라고 해도 내가 이해했다고 오해하는 그 편협함이 어떤 최선일지도요.
항상 힘내세요. 완생은 못하더라도 적어도 살아는 있잖아요.
감사합니다.
양 드림.
ps.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고 본연의 맛이 있는 연주들. 그러니까 제가 컴퓨터 음악이 발달하기 이전의 음악을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각각의 제멋대로인 것 같은 연주들이 합주로 만날 때의 이 조화로움. 디지털로는 절대 따라할 수 없는 사람의 때가 묻은 연주의 따듯함. 아 진짜 담백하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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