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끔 어머니와 데이트를 합니다. 지난 수요일 점심, 출근하기 전에 오랜만에 어머니와 데이트를 했습니다. 그날은 적당히 맛있는 점심을 먹었고 만석이라 자리가 없는 카페에 들어가 잠시 기다렸다가 자리를 잡고 커피 한잔 하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보통은 서로 바빠서 서로의 근황을 캐치업 하기도 시간이 빠듯한데, 그날은 날씨도 좋고 시간도 여유로워서 별별 이야기를 다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하다 부동산 이야기라든가 출산율이 낮은 이유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20-30대가 한국사회에서 살기 힘든 이유에 대해서 까지 이야기를 했으니 말 다했죠.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농담도 하고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의 대화도 하다보니 저번주 편지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부모세대 정도 되는 사람들은 뭘 고민할까. 그 나이가 되어서도 좋아하는 게 뭔지 알기 어려울까. 마침 대화도 무르익었고 어머니도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기에 지난주 글에 대한 어머니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무얼 좋아하시나요. 요즘 무엇을 고민하시나요.' 라고 물으니,
'양아, 나는 요즘 어떻게 죽는 게 잘 죽는 걸까 고민해.' 라고 답하셨습니다.
진짜 반칙 아닌가요. 어머니가 고민을 말하면 질문을 요렇게 요렇게 바꾸고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면 어떤지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예상하지도 못한 답변이 나와서 잠시 놀랐습니다. 자칫하면 왈칵 눈물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만 다행인 건 요즘 둘이 만나면 대문자 T 수준으로 대화를 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까진 가지 않았습니다. 수명연장치료 거부 이야기와 앞으로 달라질 실버산업 이야기 등의 또 다른 주제로 토론을 하다가 헤어졌습니다.
그래도 카페에서 나오면서 어머니와 잠시 길을 걷는데 기분은 조금 묘~하더라고요. 키는 원래 제가 한참 컸지만 원래 이렇게 아담한 사이즈였나~ 싶고, 어느새 머리는 백발이 되었고, 괜시리 주름도 많이 보이는 것 같고요. 저는 꽤나 불효를 실천하고 있어서 지금도 많이 늦었다 반성하고 있었는데, 더 늦기 전에 꼭 불효를 그만두기로 오늘도 다짐합니다.
그리고 각자가 고민하는 내용은 '때'도 중요하구나 싶었습니다. 내가 지금 하는 고민들은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고민들이구나, 누군가에겐 내일이 없어서 더이상 할 수 없는 고민일 수도 있구나 생각하게 되고요.
님 오늘 하는 고민도 요리 조리 바꿔가면서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소중한 고민이구나 하고요. 아, 그리고 오늘은 부모님께 안부 연락 한 번 꼭 드리시고요. (제가 할 말은 아닙니다만...ㅎ)
그럼 지난 한주 잘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양 드림.
ps#1
또 어느날은 고맙게도 답장이 많이 쌓여있네요. 비슷한 고민들과 위로와 감사의 문장들 너무 고맙습니다. 항상 힘을 얻고 있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ps#2
그래서 그 감사에 보답하고자 조만간 구독자분들과의 만남을 좀 기획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들 와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