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양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당시에는 만화책에 대한 수요가 꽤 있었기에 만화책을 대여해주는 책방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중학생 때는 수도 없이 만화책을 빌려보기도 했고, 그러다 좋아하는 만화책을 만나면 용돈을 모아 전권을 다 구매하기도 했습니다.
<슬램덩크>의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작품들이 그러했고, <20세기 소년>의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들이 그러했습니다. 지금도 연재중인 작품이 있어서 언제 신권이 나올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몇몇 작품은 이미 완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작가가 죽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 여러 작품 중 <배가본드>라는 작품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애증이라는 말이 정말 딱 들어맞는 작품입니다. 2014년에 발매한 37권 이후로 10년을 기다렸지만 38권은 나오지 않은 상태기 때문입니다. 정말 지독하네요.
<배가본드>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무사시라는 검객의 성장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인데, 어렸을 때는 주인공인 무사시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품을 즐겼습니다. 수 많은 전투를 이겨내고 더 강해져서 검 하나로 경지에 오르는 모습은 중딩 남학생에게 충분히 어필이 되고도 남았으니까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주변 인물들에 더 눈이 갑니다. 특히 무사시의 고향 친구로 나오는 혼이덴 마타하치라는 인물이 자꾸 눈에 밟히게 됩니다. 마타하치는 작중에서 좋아할 수가 없는 인물입니다. 주인공인 무사시는 싸우고 이겨내고 끊임없이 훈련하고 강해지는 반면 마타하치는 도망치고 거짓말하고 겉만 번지르르하게 자신도 속여가며 살아남습니다. 주인공인 무사시의 라이벌인 사사키 코지로를 사칭하는 수준까지 갔으니 말 다했죠.
<배가본드>를 N회차 정주행하면 할 수록 왜 자꾸 마타하치에게서 공감을 느끼게 되고 연민을 느끼게 되는지 만화책을 읽다가 주책맞게 눈물이 날뻔 합니다. 그것은 저를 포함한 <배가본드>를 읽는 우리 모두가 주인공인 무사시 보다는 주변 인물인 마타하치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겠죠.
어렸을 때의 저는 제가 무사시이길 바랐습니다. 공부도 운동도 곧잘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서자마자 공부도 축구도 농구도 저보다 훨씬 잘하고 뛰어난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대학생이 되어서도 사회에 나와서도 저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한 트럭이었습니다. 분에 차서 싸우기도하고 오기를 부리며 따라가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더더욱 승부욕이나 자존심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는지 점점 그들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그 무사시들을 응원하고 돕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무사시가 되지 못한 마타하치는 그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후에 마타하치는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더 이상 자신이 무사시 처럼 잘난 사람이라고 거짓말하고 떠벌리지 않습니다. 대신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옳다고 믿는 일을 실행에 옮깁니다. 그렇게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자신만의 가치를 이뤄내갑니다. 그 순간 무사시도 마타하치도 그저 자신의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똑같은 인간이 됩니다.
님은 어떤가요. 무사시에 가까운 사람인가요 아니면 마타하치에 가까운 사람인가요. 그 어느 쪽이 되었든 주어진 삶을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살아나가시길 바랍니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으면서요.
날이 다시 추워지는 듯 합니다.
긴 주말 몸조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양 드림.
ps
<배가본드>는 정말 강추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정말 비추입니다. 제발 완결이 났으면 좋겠는데 완결이 나면 그때 알려드릴게요... 이 기다림의 고통을 도저히 나눌 수가 없습니다...
ps2
이번 편지는 아래 양에게 온 편지에 대한 답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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