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생각합니다. 깨어있는 동안에는 매분 매초 생각을 안하고 있을 때가 없습니다. 오늘 점심은 뭐 먹지? 아 오늘 진짜 일하기 싫다. 주말이다. 내일 뭐하지. 등등 이 편지를 읽는 동안에도 끊임 없이 어떤 생각들이 지나가고 있을 겁니다. '분홍색 코끼리를 생각하지마!' 라는 문장을 본 순간 머릿속에 온갖 코끼리를 그리며 분홍색 코끼리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 처럼 아무런 생각도 안하고 있기란 쉽지 않습니다.
생각은 우리가 인식하고 있을 때는 한 없이 깊고 깊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 코끼리는 그만...) 아주 의도적으로요. 예를 들어 이해가 가지 않는 문제를 만나면 몇 분, 몇 시간, 며칠 동안도 골머리 터질 때 까지 생각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생각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수준으로 짧고 얕게 지나갑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자동적사고'입니다. 내가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나 어떤 상황 때문에 안좋은 기분에 휩싸였는데, 이유를 모르겠고 너무 쌩뚱맞다면 '자동적사고'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동적사고는 우리의 기분을 생각보다 강하게 그리고 쉽게 출렁이게 합니다. 예를들어 직장동료가 내가 오늘까지 해야만 하는 업무를 리마인드 해줬을 때 기분이 나쁘고 짜증났다면, '내가 일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나?' 라는 생각을 스치듯이 했을 거고 그 생각 때문에 기분이 나빴을 겁니다.
이런 직관적인 문제 라면 금방 기분이 나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단순한 질문으로요.
• 지금 기분처럼 느끼기 직전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가?
• 이 상황에 대해 어떤 이미지나 기억을 가지고 있나?
하지만 우리의 기분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직관적으로 알 수 있고 나 자신도 납득할 만한 이유가 된다면 그 기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직관적인 상황임에도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없고 기분 나쁜 상태가 이어진다면 좀 더 명확한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이 나 자신이나 내 삶 혹은 내 미래가 어떻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봐 걱정하는가?
•이 상황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는 어떤 것일까?
•상대방의 말이 나에 대해 어떻게 느낀다(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상대방의 말이 상식적으로 내 행동이 어떻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내가 규칙을 깨거나,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해서는 안 될 어떤 일을 했나?
위 질문들에 답변을 하다보면 혹은 굳이 답변하려 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생각을 가졌었고 내가 왜 이런 기분을 느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질문하는 행위는 내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답변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꼬리를 물고 새로운 질문을 만들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생각의 근원을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스치듯이 지나가면서도 비합리적인 생각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기분을 쉽게 망쳐놓습니다. 기분이 생각을 좌지우지하기도 하지만 생각이 기분을 결정짓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인지행동상담은 여기에 중점을 둡니다. 자동적으로 지나가는 생각들을 끄집어내 의식할 수 있는 상태로 올려 두는 것으로 치료를 시작합니다.
님은 기분을 선택하는 편인가요? 짜증을 선택하거나 의도적으로 우울해지고, 불안해지기로 마음먹나요? 보통은 그렇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나도 모르게 우울과 불안에 찌들게 됩니다. 더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면 그 기분들을 잘 소화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려면 내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생각에 대해 생각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도 한번 계속 습관을 들여보세요. 나도 모르고있던 내 생각을 만나게 되면 눈물이 날 정도로 나를 위로해주고 싶어질 겁니다.
양 드림.
ps
하다보니 너무 진지해지고 있는 것 같아 편지를 보내기 조심스러워집니다. 재밌다고 답장 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다음엔 조금 눈치껏 재밌게 써볼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