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관계에 있어서 극에 달한 관심은 곧 극에 달한 무관심과 연결되어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상대에 관심과 애정이 극에 달하면, 그러니까 상대를 열심히 이해하려 노력하다 보면 그 사람이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있길 바라게 됩니다. 그 말인즉 상대의 말과 행동, 생각 그 어떤 것이라도 이해해주고 존중해준다는 의미입니다.
이해와 존중이 극에 달해 어느 지점이 되면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해도 나와는 ‘관계없는’ 상태가 되는데 저는 이것이 무관심과 매우 맞닿아있다고 느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무관심하다는 것의 의미가 상대를 없는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뜻합니다.
저는 관계에서 이 메커니즘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관계의 모든 면에서 서로 존중해주고 이해해주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다만 이 메커니즘이 가끔은 관계에 독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첫번째 독은 내가 존중하고 이해한 만큼 상대방도 나를 존중하고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는 겁니다. 내가 존중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했습니다.
두번째 독은 내가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태도로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를 취하다 보니 상대방은 단순히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입니다. 위와 같은 마음가짐은 나에게 있어 너무 만족스럽고 편안한 관계를 만들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더라는 거죠. (이래서 '잘 맞는 사람'이라는 게 존재하는 건가... 당신은 여우입니까 두루미입니까)
첫번째 독은 내 안에 존재하는 마음의 문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선이기 때문에 지금은 어느정도 극복하고 최대한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죠. 어렵지만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마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두번째 독입니다. 아무리 내 마음 궁극의 오의를 전달해도 받는 사람이 몰라주면 방법이 없습니다.
무작정 이해만하고 존중만해준다고 모든 게 해결되진 않습니다. 또 내가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상대를 대해도 나에게 돌아오는 마음은 전혀 다른 것일 수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접시에 이쁘게 담아 좋은 음식만 주어도 부리가 달려있는 입으로는 맛있게 먹을 수 없습니다.
오늘도 또 사람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갑니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고민들이 여러 질문으로 흩어집니다. '나는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아니, '애초에 좋은 관계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관계라는 것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거 아닌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거 아닌가?'
어쩌면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일지도 모르고 저는 누군가를 진정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오만한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님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고 어떤 관계로 지내고 있나요. 그 사람은 님이 얼마나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요.
잘 모르겠다면 한번 물어봐 주세요.
그리고 왜 이딴걸 물어보냐고 하면 양이 물어봤다고 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