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에서 라캉의 정리에 의하면 욕망은 요구에서 욕구를 뺀 것을 의미합니다. 무슨 말장난도 이런 말장난이 어딨냐 싶은데, 라캉은 욕망이라는 단어를 욕구(need)와 요구(demand) 욕망(desire)으로 구분지어 이해하도록 했습니다. 욕구는 아주 원초적이고 생물학적인 무의식적 필요를 의미합니다. 이를 의식의 단계로 끌어와 언어로 표현한 것이 요구죠. 욕망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요구를 통해 해소되지 않은 욕구. 요구-욕구=욕망.
다시말하면 심리학적으로 욕망은 애초에 결핍에서 시작합니다. 욕망은 채울 수 없는 것이라는 논리도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내가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은 현재 그 무언가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거죠.
영화 [화양연화]의 주인공 차우와 첸 부인은 유부남 유부녀입니다. 일련의 사건으로 차우의 아내가 첸 부인의 남편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그 정황을 알게 된 차우와 첸 부인이 묘한 동질감과 외로움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끌리게 되는 내용입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혼자 저녁을 해결하던 둘은 함께 저녁을 먹게 됩니다.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은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어있습니다. 차우와 첸 부인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더욱 서로를 욕망할 수 밖에 없는 걸까요? 숨 막힐 듯 아찔한 치파오와 베일 것만 같은 칼각의 포마드 스타일. 누가 봐도 욕망할 수 밖에 없는 완벽한 모습으로 영화에 표현되는 차우와 첸 부인. 그럼에도 그들은 끝까지 선을 넘지 않습니다. 아니 결국 선을 넘지 못합니다.
왕가위감독은 그들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것 대신 프레임에 넘쳐 흐를정도로 욕망 자체를 보여주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아마 차우와 첸 부인의 욕망이 실현되었다면 영화는 이렇게 까지 회자되며 명화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을 겁니다. 관객은 그 말할 수 없고 실천에 옮길 수 없는 욕망에 공감하고 그 공감만으로도 각자의 어떤 욕망을 떠올리며 아름다움을 느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욕망을 모두 실현시킨다면 아마도 지구는 진작에 멸망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구 멸망 같은 거대한 일이 아니더라도 내 주변 관계를 지키기 위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안정적으로 생활하기 위해 등. 우리는 모두 욕망을 꽁꽁 숨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숨겨진 욕망을 자원삼아 지금을 살아가는 힘을 얻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언가를 격렬히 하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을 행동하게 하니까요. 욕망을 실현시키는 것 대신 욕망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성숙하게 소화해 내는 것. 그것이 차우와 첸 부인의 로맨스를 아프지만 아름답고 이뤄지지 않았지만 완전해 보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님에게는 어떤 숨겨진 욕망이 있나요. 그 욕망은 님에게 어떤 힘이 되어주나요.
양드림.
ps#1
피치카토로 만드는 몽글몽글한 바이올린 소리와 낮은 음역대의 차분한 비올라 소리로 메인 멜로디를 잡은 메인테마 곡. 제목이 Yumeji의 테마인 이유는 왕가위 감독이 91년도에 개봉한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 [유메지]의 메인테마 곡을 가져다 썼기 때문입니다. 영화 [유메지]는 화가 다케히사 유메지의 이야기로, 감독 스즈키 세이준은 유메지의 욕망과 불안을 주제로 영화를 이끌어갑니다. 이는 [화양연화]의 주된 감정선과도 비슷하기 때문에 [유메지]의 메인테마가 [화양연화]에도 찰떡같이 어울리지 않았나 싶네요.
ps#2 (오늘 뉴스레터 제목에 광고가 붙은 이유)
영화에 후각이 있다면 어떨까요. [화양연화]의 아름다운 프레임 기법과 숨막히는 슬로모션 연출, 감각적인 영화 음악. 만일 이 영화에 향이 난다면 아마 이런 향이 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리자이어(RESIRE)라는 디퓨저입니다. 해당 제품의 담당자는 뉴스레터를 통해 진정성있는 고객을 만나 제품을 소개하고 소통하고 싶었고, 저에게까지 연락이 닿았네요. 현재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하고 있어 관심있으신 분들은 링크를 타고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ps#3
더불어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숨겨진 개인의 욕망에 관해서 익명으로 답장을 보내시는 분에게 추첨을 통해 리자이어 디퓨저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뭐 이 뉴스레터 사상 최초로 광고가 붙었으나 제가 얻는 광고료나 제품은 일절 없고요. 구독자 분들께 소정의 선물이 가는 광고 건이라 흔쾌히 수락할 수 있던 거 같습니다. 뭐 거짓말로라도 욕망에 대해 써보세요. 글을 쓰다보면 내가 가진 나도 몰랐던 숨겨진 욕망을 알게 될지도 모르죠. 아래 버튼을 통해 참여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