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 중 한 명이 장가를 갑니다. 모두가 그러하듯 얼굴 맞대고 만나기는 어렵고 '단톡방'에서만 간헐적으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그런 친구들인데 한놈이 갑작스럽게 저녁 모임을 추진하는 걸 보니 이제는 때가 되었는가 봅니다.
재수학원에서 만나 삼삼오오 모여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술 마시며 단합하던 그때 그 시절의 친구들이라 그런지 꽤 인연이 질깁니다.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붙잡으면서 동시에 수능이라는 험난한 산을 넘는 모습이 참 쓸데없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없던 전우애도 억지로 만들어가며 지긋지긋하게 15년을 함께 했네요.
우린 서로 무엇이 그렇게 좋아서 그 짧은 1년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낭비했을까요. 희한하게 낭비했던 그 시절이 매번 그리운 걸 보니 우리는 그걸 추억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 같습니다.
누가 죽거나 결혼을 하거나 애가 돌이거나 셋 중에 하나는 해야만 만나지는 사이지만 20대를 함께 보내서 그런지 꽤 남은 게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팟캐스트인데요. 이 넘쳐나는 잉여력과 전우애로 나름 캐미가 있었던지라 라디오 PD가 꿈인 친구 한놈을 필두로 팟캐스트를 녹음했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마치 타임캡슐(진짜 옛날 물건)을 여는 것처럼 들어봤는데 이건 분명 판도라의 상자입니다. 정말 이런 말을 내가 왜 했지 싶을 정도로 부끄러움과 이불킥의 연속... (언젠가 이렇게 쌓여가는 글들도 10년 뒤에 보면 또 부끄러운 글이 될지도....)
그럼에도 몇몇 에피소드는 꽤 재밌고 유익하기까지 했습니다. 다시 모여서 팟캐스트 시작하자는 섬뜩한 말이 나올 정도로 즐거운 시간여행이었습니다. 당시 했던 팟캐스트 특성상 게스트가 꼭 한 명 필요했는데, 그때 그 시절 게스트들을 수소문해 또 초대해 보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꽤 구체적이어서 그래서... 무섭다...) 조만간 글이 아니라 음성으로도 만나 뵐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귀갓길은 어린이대공원을 끼고 빙 돌아가는 길입니다. 큰 건물이 없고 녹음이 우거진 곳이라 선선하다 못해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는 길인데요. 지독한 여름 동안 그 선한 바람을 통 느끼질 못했는데 오늘 집에 돌아가는 길 분명히 느꼈습니다. 바이크를 타고 달리다가 딱 어린이대공원에 닿으면 느껴지는 그 선선함을요. 지난주는 설레발이었고 이번엔 진짜다... 믿어주세요...
양드림.
ps
남미의 뜨거운 여름을 느낄 수 있는 음악들을 디깅 하다가 뜨겁다 못해 녹아버리는 음악에 빠져버리는... 브라질 아티스트 중 눈에 띄게 장르 스펙트럼이 넓어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Ed Motta입니다. 재즈, 펑크, 보사노바, 클래식, 팝 등의 수많은 장르를 넘나들며 앨범 중 [AOR] 이라는 이름의 앨범도 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