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가족 세우기' 라는 워크숍을 경험했던 적이 있습니다. '가족 세우기'는 독일의 심리치료사인 버트 헬링거가 창안한 심리치료 방법인데요. 워크숍은 안내자, 주인공, 대리인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눠서 진행합니다.
안내자는 이 워크숍 전체를 주관하는 사람입니다. 주인공과 대리인 다수를 안내하는 역할이며 간단한 명상을 통해 공간과 마음을 환기하고 질문을 통해 주인공의 이야기를 끌어냅니다.
주인공은 안내자의 질문에 대답하며 문제나 고민을 간단히 공유합니다. 그 공유된 내용과 주인공을 중심으로 장이 펼쳐지고, (여기서 말하는 장은 워크샵에 참여하는 다수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단순한 공간을 의미합니다.) 그 장에서 주인공은 워크숍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을 지목해 자신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의 역할을 대신할 대리인들을 구성합니다.
대리인들은 주인공의 지시에 맞춰 자리를 잡고 앉거나 서있거나 눕기도 합니다. 때때로 안내자의 질문에 대답하기도 하며 아주 이완된 상태에서 자유롭게 무의식적으로 행동합니다.
가족 세우기는 치료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대역을 통해 재현한다는 점에서 게슈탈트 치료에서의 사이코드라마(심리극)과 굉장히 비슷합니다만 가족 세우기의 대리인은 특정 구성원을 연기하지 않습니다. 대리인은 말그대로 대역이지만 아주 자유롭게 그 '장' 위에서 무의식적으로, 제멋대로 움직입니다.
가족세우기가 진행되는 '장'에서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어떤 에너지(?)가 펼쳐져 있으며 주인공을 전혀 모르는 대리인이 그 '장'위에 올라서면 에너지와 공명하게 되어 이상한 말이나 특정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아 이걸 또 글로 설명하려니 점점 사기꾼 같아지는데 실제로 그렇습니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그 기묘한 '장' 속에서 주인공은 유일하게 이야기를 경험한 사람이다보니 나를 전혀 모르는, 심지어 오늘 처음 본 사람이 취하는 행동을 관찰하고 느끼면서 어떤 역동을 발견하게 되고 그 역동은 다시 내 문제와 고민의 실마리가 됩니다. 가족 세우기는 안내자가 주인공에게 대리인들의 감정과 행동들에서 피어난 역동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길게 설명했지만 단번에 이해하시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몇 번 경험해보지 못했고 아직도 이해하는 중이거든요. 다만 워크숍 자체가 비언어적이고 신체적인 표현이 많기 때문에 지금까지 언어로만 표현되었던 문제나 고민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아버지의 역할을 하면서 취하는 기묘한 행동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수천 수만가지 생각이 들거든요. 그 행동에서 피어나는 여러 감정과 역동들은 분명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과거에 있던 경험들로 인해 내 안에 갇혀있는 아버지라는 이미지를 '지금-여기'에 아주 다른 관점으로 풀어 놓을 수 있는 기회라는 거죠.
명상, 에너지, 장, 그리고 나를 둘러싼 생전 처음보는 대리인들의 기묘한 행동들. 저도 처음엔 '뭐 이런 사주팔자 운세풀이 타로점 같은....' 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점점 더 '가족 세우기'를 이해할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가족 및 부부상담 수업에서 경험적 가족상담치료를 배우면서 '가족조각'이라는 비언어적이면서도 '가족 세우기'와 아주 비슷한 상담기법을 체험했는데요. 단순히 주인공 선생님의 어머니 역을 맡아서(수 많은 여자 선생님들 중에서 내가 왜 어머니였을까... 아직도 의문...) 주인공을 노려보는 연기를 했을 뿐인데, 주인공 선생님은 20년전 과거의 그 감정에 이입해 거의 눈물을 흘리실 뻔 했다고...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너무 가까워서 의지가 되고 또 반대로 너무 가까워서 쉽게 상처 입게 되는 그런 존재. 그렇다보니 조그마한 위로에도 사랑이 넘치고 아주 작은 균열에도 순식간에 부서지고 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가족이라는 단위는 쉽게 폐쇄적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님의 가족은 어떤가요? 별 문제가 없나요?' 같은 질문을 쉽게 할 수 없는 분위기니까요. (그러면서 은근슬쩍 물어보기)
님에게 가족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전 모르는 사람이 내 부모님 역할을 한다고 해도 말이 되고, 생각보다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마음이 시원해지고 가벼워지는 일이 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양드림.
ps
정말정말 오랜만에 콜드플레이의 1집을 꺼내 들었습니다. 순식간에 2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지금의 트렌디(?)한 콜드플레이도 싫진 않지만 역시 그 시절 어쿠스틱한 콜드플레이는 형용할 수 없는 갬성이 있습니다. 1번 트랙부터 10번 트랙까지 모든 노래가 마음을 후벼 파는 것이 가을이긴 가을인가봅니다.
아 그리고 숨겨진 11번 트랙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앨범을 통째로 들어보세요. 끝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