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양입니다.
오늘 준비한 글은 가끔 이 레터에 올라오는 내 맘대로 콘텐츠 리뷰입니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라는 드라마입니다.
1.
우선 이 드라마를 보게 된 이유는 2024년 MBC 연기대상에서 한석규 배우가 대상을 수상하며 수상 소감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연말 시상식을 정말 단 1초도 보지 않았는데, 그 소감 장면이 알고리즘을 타고 저에게도 오더군요. 작품도 작품이고 대상 수상 소감이기에 큰 이슈였겠지만 아마도 제주항공 참사와 연관되어서 더 큰 이슈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석규 배우는 이 드라마를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했습니다. 그 지점이 작년에 재밌게 본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와 이어지면서 쉽게 관심이 갔고, 최근에 재밌게 본 드라마가 별로 없었는데 오랜만에 훌륭한 드라마를 만난 것 같네요. (아직 끝까지 안봤음 주의)
드라마 초반 부에는 연출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물론 요즘 한국 드라마의 퀄리티가 굉장한 것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근래에 본 영상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특히 시간과 감정을 빛을 통해 잘 표현한 몇몇 장면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게다가 이 프레임 속에서 그 빛을 받으며 연기하는 배우들이 매우 훌륭합니다. 살펴보니 연출상, 작품상, 신인여배우상, 연기 대상 등 2024년 작품 중에서 상을 꽤 많이 받은 작품이네요.
2.
사이코패스 나 소시오패스로 잘 알려진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다른 성격장애와 같이 유전적인 문제, 기질적인 문제, 성장환경 문제 등 다양한 요소가 맞물려 발현됩니다. 아무리 유전적으로 사이코패스가 될 가능성이 태어날 때 부터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유성아 역과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장하빈 역을 비교해보면 (물론 가상의 인물이지만,) 유전적, 기질적 문제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똑같이 사이코패스 로 태어나도 부모의 사랑이 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이야기입니다만, 장하빈 역을 보고 있자니 참 사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느낌입니다. 아직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않아서 이 부분은 짧게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3.
장태수(한석규)가 팀장으로 있는 범죄행동분석팀의 캐릭터들이 재밌습니다. 아주 상반 된 두 캐릭터 이어진과 구대홍 입니다. 이어진 경장은 단정하고 꼼꼼하면서도 아주 T스러운 원리원칙주의자고, 구대홍 경장은 산만하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아주 F스러운 인도주의자입니다.
극 중에서는 둘 중 하나만 합격할 수 있는 면접에서 모종의 이유로 둘 다 합격해 함께 팀의 구성원이 되는데요. 행동주의 심리학과 인지주의 심리학의 만남이라고 해야할까요. 범죄행동분석팀에 꼭 필요한 두 사람이 만난 기분입니다.
피의자가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 고민하는 범죄행동분석 영역에서는 사건 현장이 말해주는 팩트들이 가장 중요하겠습니다. 왜 여기에 구덩이를 팠을까, 왜 창고에는 혈흔이 하나도 없을까, 왜 피의자는 기름이 필요했을까 등 현장이 말해주고 있는 정황과 증거들을 토대로 피의자의 심리를 파악해야겠죠. 아주 합리적인 의문과 아주 논리적이고 근거 있는 추측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피의자도 결국 사람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해도 이해할 수 없는 퍼즐들이 있습니다. 그 퍼즐에 인지의 영역이 더해지면 한층 더 깊게 사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아주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행동도 아주 순식간에 인지의 영역에서 합리화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인지부조화를 없애는 과정을 겪은 피의자의 행동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겠죠.
4.
초반에 그렇게 논리적이고 칼 같던 장태수 팀장도 딸이 피의자일지도 모른다는 정황들에 모든 논리를 집어 던지고 극적으로 감정적인 사람이 되어 범죄자를 특정 짓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인간은 일면 합리적이나 다분히 감정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왜 딸 앞에만 서면 그렇게도 논리적이고 합리적일까요. 장태수가 밖으로 보이는 행동들은 딸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보여지는 것과 말로 표현하고 보여주는 것은 다릅니다. 특히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같은 메시지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내 의도가 아무리 선하다 한들 받아들이는 사람은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죠.
장태수가 장하빈을 그토록 집요하게 의심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논리 정연하게 장하빈이 무죄임을 증명해내야만 장태수의 사랑은 완성됩니다. 반면 장하빈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와 의심이 사랑의 과정이 상처가 됩니다.
반면 윤지수(엄마)는 논리도 합리도 다 집어 던지고 장하빈을 지키려 애를 씁니다. 안타까운 점은 합리적인 아빠도 감정적인 엄마도 그 어느 쪽도 딸에겐 메시지가 닿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으로는...)
5.
그런면에서 가족은 어렵습니다. 더 넓은 의미에서는 관계가 어렵습니다. 우린 모두 같은 사람인데 조금씩 채널이 다르고 주파수가 다르니까요. 물론 장태수의 가족에는 그 누구도 견디기 쉽지 않은 비극이 자리하고 있지만 보통의 가족에게도 그런 비극 없이 서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쉽지 않습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우리 가족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옛날에 라디오를 듣던 시절 MBC FM 라디오를 즐겨 들었었는데 91.9 와 88.7을 왔다갔다 하면서 주파수를 잡았던 기억이 납니다. 보통 88.7이 잘 잡혔는데 가끔 별로다~ 싶으면 이리저리 안테나를 옮기고 괜시리 툭툭 라디오를 때리기도 하고 91.9로 맞춰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이런 비슷한 것이 아닐까 대충 이해해봅니다. 가끔 노이즈가 심할 땐 툭툭 쳐보기도 하고 (너무 쎄게 치면 고장남...) 이리 저리 주파수를 바꿔 보는 것.
저도 아직 다 본 상태가 아니라 이런 저런 짧은 생각들을 주저리 늘어놨습니다. 직접 보세요.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다가오는 설 연휴에 정주행 하시길 강력히 권장합니다. (광고 아님)
양 드림.
ps.
내가 나에게 응원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삶의 동력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매우 훌륭한 사람이겠으나 분명히 외로운 사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외로움을 억지로 괜찮다고 살고 있는 사람은 위험하고요. 누군가에게 응원 받는 일은 인간에게 매우 큰 자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모양의 사람인지 알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아주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잘 다녀오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