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저에게는 꽤 심각하고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대 때부터 시작된 이 관계의 스트레스가 지금까지도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까요. 이 문제는 제가 심리상담을 공부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더 이상 고통받고 싶지 않은 마음과 어떻게든 아버지라는 사람을 이해해보려는 마음입니다.
최근 오래된 이메일을 발견해 몇 천개의 읽지 않은 메일들을 정리했습니다. 처음엔 혹여나 중요한 메일을 놓쳤을까 하나하나 정리했지만, 정리가 점점 길어지니 손가락이 아프고 눈이 아파옵니다. 그래서 그냥 전부 삭제해 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정리하지 않고 이렇게 먼지가 쌓인 줄 몰랐다면 중요한 말이 있더라도 의미가 있을까 싶은거죠.
지금 아버지와의 관계가 딱 그런 상태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이에 얼마나 큰 고통이 있었든 얼마나 서로 힘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졌습니다. 세상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연을 쉽게 끊을 수 없다고 아무리 도의적인 이야기를 해도 앞뒤 가리지 않고 끊어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사라진 상태입니다.
아버지를 미워한다는 감정은 쉽지 않았고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마음에서 자꾸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그 미워하는 마음과 죄책감의 충돌은 한동안 저를 괴롭게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한참을 그 괴로움과 무기력함에서 허덕이다보니 점점 제가 무너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토록 미워하는 존재로 인해 나자신이 무너지는 것은 너무 억울하니 결국엔 미워하는 마음도 그만두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용서하게 되어서 그만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겠습니다.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의 일종이었는지 20대 시절엔 박터지게 아버지와 싸워 왔는데, 그러니까 아버지를 종종 찾아 뵙고 대화를 요청했었는데, 미워하는 마음도 그만두어버리니 아버지를 멀리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멀리하게 된 것도 10년 즈음 되어가는데 드디어 그쪽에 저의 마음이 닿았나 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도 이제서야 (10년이 넘었는데..)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갑자기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단 둘이 대화를 나눈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수준인데 말입니다. 그 약속을 잡는 과정도 역시나 '상식적'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버지고 그래도 아들인 건지 우여곡절 끝에 약속을 잡게 됐습니다.
성인이 되고 부터는 대화가 정상적이었던 적이 없고 항상 싸움으로 끝나는 대화만 한 우리가 무슨 대화를 해야할까요. 근 몇년 동안은 명절에 하루 이틀 만나는 것 빼고는 얼굴을 맞댄 적 없는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미워하는 마음도 없이 그냥 흘러가 버린 시간들에 어떤 의미가 있고 무슨 이유가 있을까요.
오래된 메일함이 텅 비워져 있는 것 처럼 저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래도 글을 쓰면서 감정을 살펴보니 하고 싶은 말은 생겼지만, 그게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내용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게 되겠네요.
이 공간에 저의 개인적인 문제를 이렇게 직접적으로 털어 놓는 경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무언가 부끄러우면서도 후련합니다. 당장 다음주에 만나 뵙기로 했으니 뭐 어떻게든 되겠죠...
양 드림.
아 이런 기분에 어울리는 노래를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그냥 최근에 들은 노래 중 기분이 좋았던 노래를 올립니다. 기분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