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밴드에서 만난 멤버들을 수년 만에 만났습니다.
함께 음악을 했던 그때는 서로 음악이야기를 주로 하고 장난치고 웃고 떠들면서 노느라 바빴는데 아저씨가 되어 다시 만나니 주제가 너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일 이야기, 사는 이야기 술이 조금 들어가니 먹태를 뜯으며 정치, 철학 이야기까지하고 있더라고요.
물론 저는 장난치고 웃고 떠드는 것도 좋지만 진지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대화도 좋아하기에 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이야기 나눈 사람 중에는 수학 박사와 공학 박사가 있었는데, 이 둘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특히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마블 영화의 한글 자막 번역 문제 (박지훈) 를 이야기하면서 완벽하게 두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자막 번역 작업을 하면 어떨까? 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수학에서 '완벽'이라는 단어는 발작 버튼이다. 완벽이란 무엇인가 부터 정의해야 한다. 로 되돌아 왔습니다. (마치 자석은 왜 서로 밀어내나요? 라는 질문에 리처드 교수에게 혼쭐 나는 것 처럼..) 뭐 주제의 마지막은 황석희가 번역했으면 좋겠다.. 였으니 생각보다 많이 어지러운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수학이나 공학의 영역에서 말고도 완벽이라는 단어는 어려운 단어같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서 '완벽'하게 알아낼 수 있는 게 몇이나 될까요. 특히나 심리학에서도 아무리 가설을 세워 정보를 긁어모아 통계를 내어봐도 '이 가설은 통계적으로 우연이 아닙니다.' 정도의 주장을 하는 것이니까요.
상담심리학 영역에서도 완벽은 무서운 단어입니다. 요즘 전문 상담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와중에 내담자와 대화한 축어록을 살펴보며 피드백을 갖는 시간을 종종 갖습니다. 이 축어록을 살피다 보면 초심 상담자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하나 있는데요. '내가 내담자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고 순간 착각하게 되는 실수입니다.
한 개인의 마음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정리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상담자 입장에서는 내담자의 심적 고통을 어떻게 하면 해결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으니 곧바로 솔루션을 내어주고 싶은 거죠. 머리에 못이 박힌 사람이 찾아와서는 왜인지 모르겠는데 두통이 너무 심해서 못살겠다고 하는데 '그럼.. 머리에 있는 못을 빼시죠..' 라고 말하면 안된다는 것... 너무 어려운 일 아닌가요....
상담자가 흔히 하는 실수를 보고 저도 '당장 머리에 못 부터 빼시죠...' 라고 할 것 같아서 내심 두렵습니다. 그래서 축어록 한켠에 이렇게 메모를 해 두었습니다.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알아차리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전략을 세울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 이라고요.
님, 혹시 완벽한 하루를 바라고 있으시다면 꿈 깨시죠. 그런 건 없습니다.
다만 완벽에 가까운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양 드림.
오.. 정말 많은 분들이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군요(?) 경험을 토대로한 현실적인 조언과 공감들에 깊이 감사를 표합니다. 이런 편지를 주고 받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를 마주한 것과는 분명 다르겠죠. 그것 만으로도 저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불화' 라는 이벤트에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커졌습니다. 저는 그 두 분의 화해를 위해 오히려 아버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역할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꽤 크고요. 사실 '나는 왜 아버지를 미워하는가?' 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하기 어려웠는데, 저도 누군가에게 털어 놓고 설명하려고 하니 정리가 되는 기분이네요. 고맙습니다.
가족상담을 공부하다보면 가계도의 중요성을 알게됩니다.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 부모님과 조부모님과의 관계를 샅샅히 살피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해는 어느정도 과정을 거치긴 했습니다만, 그것을 '상호 이해'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희 부자지간에는 그 '상호 이해'가 없는 것 같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