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한 친구가 옆동네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삿짐 옮기는 것을 조금 도와주고 가구 조립하는 것도 조금 도와줬습니다. 혼자 살기 딱 좋은 크기에 채광좋고 조용한 그런 집이었습니다. 공간에 하나 둘 물건을 올리고 이것 저것 채워두는데, 냉장고 설치 기사님과 인터넷 설치 기사님이 동시에 도착해서 순간 집이 왁자지껄해졌습니다.
10명 남짓한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서 집다운 집을 만들기 위해 와르르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아 이게 사람이 살아가는 느낌인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고작 한 사람이 살 작은 집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으쌰으쌰 힘을 모으다니 꽤 감동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동이랄것도 없었지만 노동의 대가로 짜장면과 탕수육을 얻어먹고 저는 개이득을 본 기분이었습니다.
2.
오랜 친구들을 만나 저녁을 먹으며 근황토크를 했습니다. 대화 중 기획 쪽에서 일하는 친구 장과장의 하소연을 듣게 됐는데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영상작업이 필요해 외주 업체와 소통을 하는데, A / B / C 작업을 모두 의뢰해야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웬걸, 업체에서 B 작업만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는 겁니다. A작업 C작업은 관심 없고 B작업은 매력이 있어서 단가가 안맞아도 하고 싶다는 태도였다는 것. 그 외에도 매 순간 꿀밤을 맥이고 싶었다는 것 같은데, 족발을 뜯느라 잘 못들었습니다.
함께 자리하고 있던 친구들 중에는 마침 인간 송태춘이라는 영상 전문가가 있었습니다. 안그래도 장과장은 이미 사건 당시 송태춘에게 도움을 받아 대충 교통정리를 완료했다는 썰이었습니다. 덕분에 송태춘씨의 '영상업을 대하는 자세와 철학'이 담긴 열변(약 30분 분량의)을 들으며 치킨을 뜯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3.
친한 친구의 (왜 이렇게 친구가 많아..) 가게가 재개발 구역에 있어 철거가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동네에 이주센터가 세워지고 주민들의 이주비용에 대한 보상금을 책정해야 하는 상황인데요. 이런 저런 보상금 항목 중에 인테리어에 대한 보상이 있었습니다. 그 가치를 감정평가 받아서 일정부분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인테리어 견적서를 써 줄 업체를 찾기 어려웠나봅니다. 견적서를 제출해 감정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한은 당장 다음날이고요.
친한 친구가 인테리어 업을 하고 있기에 곧바로 연결을 해줬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저는 그 둘에게 각각 연락처를 던졌습니다. 다 큰 어른 둘이서 알아서 잘 해결 하시길~ 하고 잊고 있었는데, '양아 네 친구가 잘 도와줬다 고맙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인테리어 친구가 저한테 도움 받은 게 많아서 무조건 도와주겠다고 했다더군요. (그럼 쟤 말고 날 도와 제발...) 두 사람을 연결해 준 저에게는 퍽 기분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4.
최근 김태호/GD를 중심으로 기획된 프로그램 <굿데이>를 보면서 정말 김태호 답고 GD 다운 기획이다 싶었습니다. 스케일이 크기도 하고 의미가 좋기도 하고요. 한편으론 어쩜 저렇게 너도 나도 돕겠다고 나서는 지 부러울 정도였습니다. 저도 기획일을 잠깐 했었던 때가 있어서 알맞은 기획에 알맞은 사람을 채워 넣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알기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반대로 너도나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는 상황도 난처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수많은 콜드메일을 보내면서 거절의 연속을 겪는 것도 어려움이지만 반대로 돕겠다는데 거절하는 것은 더 난처한 일이니까요. 그리고 GD 인생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검은 마음으로 접근했을까요. 어후 생각만해도 GD 같이 유명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결론은 GD같이 유명한 사람이 되자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고 살자' 입니다. 주말 아침에 이삿짐도 좀 날라주고, 하기 싫은 일도 좀 해주고, 난처한 사람도 좀 돕고, 둥글게 둥글게 사람을 쌓아서 살다 보면 누가 탕수육이라도 사주겠죠 뭐.
기획의 절반은 네트워크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나머지 절반을 못채워서 기획일을 떠난 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