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잔잔하면서도 인상 깊은 영화를 오랜만에 만난 기분입니다.
<퍼펙트 데이즈>는 주인공 히라야마씨의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조금은 지루할 수 있어 영화를 시작하는데에 여려움이 있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약 두 시간 분량의 영화에서 초반 30분 가량은 히라야마씨의 '완벽한 일상'을 말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니까요.
히라야마씨의 강박에 가까운 '완벽한 일상'을 천천히 들여다 보면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과도 말을 잘 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아주 평온한 하루를 보고 있자면 보는 사람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지는 기분입니다. 그 편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들여다보면 아 이 아저씨는 이런걸 좋아하는 구나, 어 웃었다! 하면서 생각보다 몰입하게 되기도 합니다.
영화가 무르익어가면서 그 반복되는 일상에도 변주가 일어납니다. 주변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그 완벽함에 균열이 생기고 강박에 가까운 루틴들이 무너지면서 히라야마씨에게도 위기가 찾아오는가?! 싶었는데 웬걸, 아저씨는 오히려 웃습니다. 그 웃음을 보니 영화 초반에 그려진 히라야마씨의 '완벽한 일상'은 평안해 보이지만 사실 감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매일 챗바퀴 굴러가듯이 똑같은 하루를 사는데도 행복해 보였던 히라야마씨. 사실은 굉장히 무기력한 사람이었던 것 아닐까요. 5살 아이의 어리광에 가까운 사랑 타령을하는 동료도,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는 소녀도, 자신의 인생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서 아둥바둥 살아가는데 히라야마씨는 그런 게 없으니까요.
그런면에서 히라야마씨는 사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둥바둥 안간힘을 써도 자신이 원하던 삶은 이룰 수 없었고 또 이제와서 안간힘을 써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걸 내려놓고 사는거죠. 그와 동시에 자신의 이 평안하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행복하다'고 억지로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력감에 지배된 사람이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선택한 합리화 같은 거죠.
히라야마씨가 단조로운 삶 속에서 푸릇하게 자라는 식물과 그 사이에 비치는 햇빛을 소중히 여기는 따듯한 사람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그림자에는 자신의 복잡한 심경, 어둡고 아픔이 가득한 심리상태가 숨어있습니다. 히라야마씨가 왈칵하고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대목을 보면 자연스래 느껴집니다.
카세트를 엄청 모았던 것으로 보아 히라야마씨가 아둥바둥 싸워서 쟁취했어야 하는 것은 아마 '음악을 하는 삶'으로 보여집니다. 아버지를 죽어도 만나기 싫어하는 모습, 음악을 소중히 하는 모습, 그리고 위에 말한 '나는 이걸로 행복해'라는 마인드 등을 보았을 때 아마도 음악을 하지 못해 고장난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여러분들도 소중하게 인지하고 있는 무언가가 분명 있을겁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 이면에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외면하고 있는 혹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이면의 것이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일지도요.
그래서 오늘은 또 어떤 삶을 살아가셨는지 혹은 어떻게라도 살아남으신건 아닌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양 드림.
ps
영화에서 음악은 꽤 중요한 소재로 등장합니다. 그 음악 중에서도 주로 언급 된 아티스트는 Lou Reed 입니다. 루 리드는 조금 생소할 수 있지만 유명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보컬이었죠.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밴드 이름답게 인디 씬에서 굉장히 유명했지만 대중적으로는 흥행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시대가 지나고 그 음악성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한국에서는 영화 <접속>의 OST로 [Pale Blue Eyes]가 아주 대중적으로 흥행했습니다.
ps2
아 여담으로 히라야마씨 정도는 아니더라도 집을 좀 말끔히 해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언젠가 갑자기 사춘기의 조카가 와서 재워달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잘 사냐 재인아..)
p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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