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길고 길었던 가게 정리가 이제야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다음 세입자가 4개월 만에 나타났고, 치열하게 권리금 조정을 마친 후에야 계약이 완료 되었네요. 역시 세상은 무섭습니다. 10원 한 장도 이유가 있어야 하고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물론 앓는 소리에 서로 조금씩 양보한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돈이 무섭습니다.
계약 날짜에 맞게 잔금 처리를 하고 보증금을 돌려받고 권리금을 정산하고 가게를 운영하는 데에 받았던 대출을 정리하면 이제 빈털털이네요. 있다가도 없는 게 돈이고 없다가도 있는 게 돈이라고 그러던데 전혀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맨날 없는 게 돈 입니다 ㅎㅎ...
살면서 몇 번의 폐업을 겪었지만 가장 최근의 폐업이라 그런지 뭔가 더 뼈 아픈 느낌입니다. 그래도 몇 번 해봤다고(?) 일사천리로 뚝딱 행정업무를 마무리 짓는 걸 보니 성장했다고 해야 하나 이걸... 폐업 전문가 납셨네 아주... 다시 또 가게를 차리려는 꿍꿍이를 마음 한켠에 심어두고 눈 앞에 있는 해야 할 일을 또 해야겠죠. (정신 못차렸네 이짓을 또 한다고?)
2.
뜬금없이 고딩 때 듣던 노래를 들고 왔는데요. 최근 좋아하는 밴드의 드러머 채드 아저씨의 영상을 보고 너무 감명을 받아 소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Drumeo 라는 드럼 전문 유튜브 채널의 콘텐츠 중 하나인 <
Hearing Songs For The First Time> 에서 채드 아저씨가 처음 들었다고 주장하는(?) 노래에 드럼 커버를 한 장면이 너무 재밌어서요. 채드 아저씨가 오늘 소개한 노래 TSTM의 The Kill을 현장에서 처음 접하고는 바로 드럼을 휘갈겨 버리는데 묘하게 원곡과 찰떡같은 드럼을 얹어버리는 거죠.
제 입장에서는 골백번은 더 들은 노래를 채드 아저씨가 처음 들었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원곡이 생각 나지도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드럼을 얹어버리는 모습이 기가 막힙니다. (What the F was that? Is that like
My Chemical Romance or something? 에서 뒤집어졌네)
어느 한 분야에서 정점에 오르면 이렇게 보법이 다릅니다. 채드 아저씨 말고도 이 유튜브 채널에는 다양한 드러머가 처음 듣는 노래에 드럼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각자가 처음 듣는 노래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것도 재밌습니다. 다른 드러머들은 각자 처음 듣는 곡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악보를 써가면서 몇 번의 시도와 수정을 거쳐서 나름의 곡 해석을 더해 연주를 마무리합니다.
반면 채드 아저씨는 이 콘텐츠에서 The Kill 말고 다른 노래에도 드럼을 연주했는데, 모두 원테이크에 직관적으로 연주합니다. 채드 아저씨가 얼마나 자유분방하고 자신의 목소리(연주)에 자신있는 사람인지 다시 느끼게 되는 순간입니다. 채드 아저씨는 친정 밴드 RHCP에서 수백 곡은 연주했을텐데 그 곡들에 녹음된 드럼 소리가 매번 개성있고 명료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네요.
3.
그러면서도 동시에 채드 아저씨는 얼마나 많은 실패를 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원테이크에 직관적으로 선택한 길이 매번 옳은 길이었을까요.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채드 아저씨의 연주가 수백 곡에 걸쳐서 존재하는데 아마도 수천 번의 습작들이 있기에 존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랜만에 폐업이라는 씁쓸한 실패를 맛 봤습니다만, 언젠가는 또 활기차게 존재할 저의 가게를 상상해 봅니다. (얼마나 활기찰 건데...) 처음 열었던 가게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누가 기억이나 해주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까지도 저에게 어떤 교훈이 되고 있고, 오늘 눈물로(?) 정리한 가게도 따끔한 회초리가 되어 있으니 저는 또 어느 방향으로든 성장 한 거 아닐까요.
이제는 그만 성장하고 좀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애써 외면하며...
양 드림.
ps
오늘 저만 재밌는 이야기 한 것 같아서 조금 눈치 보이네요. 으아.. 모르겠고 밴드하고 싶다.. 저는 이런 헤비하고 하드한 곡을 들으면 속이 뻥 뚫리는데 여러분들은... 시끄럽다고 생각하실 지도요... 미리 사과드립니다. 다시 말랑한 노래들로 돌아오겠습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