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검사와 관련하여 여러 실제 케이스를 두고 공부를 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최근 한 중학교1학년 남자아이의 심리검사 결과를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요. 검사 결과가 꽤 재밌습니다.
심리검사는 크게 객관적 검사(Objective test) 와 투사적 검사(projective test) 두 종류로 나뉩니다. 객관적 검사는 질문항이 있고 그 문항에 그렇다/아니다 혹은 척도에 맞게 정도를 체크하는 것으로 검사가 진행됩니다. 흔히 알고 계시는 MBTI처럼요. 그럼 투사적 검사는 뭐냐, 말그대로 수검자의 심리 상태를 종이 위에 투사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것이 글이 될 수도 있고, (SCT) 그림이 될 수도 있습니다. (HTP, KFD) 아니면 아주 추상적인 그림을 보여주고 기분이나 생각을 물어보는 검사도 있고요. (로샤)
앞서 이야기한 중학생 친구가 객관적 검사인 MMPI와 TCI에서 놀라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무결점의 사람으로요. 임상적 측면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TCI 성격 유형에서도 보기드문 '성숙한' 성격으로 나왔거든요. 아주 근면 성실하고 학업에 충실한 모범적인 학생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 검사 결과를 두고 좋은 학생이라고 칭찬할 수도 있지만 조금 궁금해야할 여지는 있습니다. 객관적 검사는 방어적인 수검자의 심리상태를 들여다 보는데에 한계가 있거든요. 얼마든지 자신을 숨기고 '좋은 사람'으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MMPI에서는 수검자의 방어적 수준을 나타내는 점수도 포함되어있습니다. 그 점수가 너무 높게 나오면 수검자가 괜찮은 척, 좋은 척(faking-good) 하고 있다고 파악할 수 있죠.
이 친구를 상담한 내용을 살펴보면 가족관계는 대략 이렇습니다. 학원 원장님인 어머니, 평범한 아버지, 특목고를 진학한 공부 잘하는 형. (벌써 감이 오시죠) 수검자가 중학생의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어머니와의 상담이 필수적으로 이뤄졌는데요. 어머니가 첫째를 특목고에 보내느라 온 신경이 가 있고, 둘째는 알아서 잘 크더라고 말한 대목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조금씩 힌트를 얻고, 투사 검사를 살펴보면 참 슬픈 내용이 나옵니다.
이 어린 친구가 아주 열심히 다른 검사에서 괜찮다고 자신을 숨겼지만, SCT, HTP, KDF에서 아주 우울한 모습을 보였거든요. SCT를 보니 가장 우울한 것은 시험을 망쳤을 때, 가장 불안한 것은 다가올 수학경시대회 입니다. 보통의 공부 잘하는 학생 같지만 더 살펴보면 부모님에게 서운하면서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양가감정과, 따듯한 가족에 대한 열망이 컸습니다. 특히 가족을 그리는데 자신을 그리지 않는 모습에서 우울감을 체크할 수 있었고, 곳곳에서 불안함을, 디테일한 곳에서 도움이 필요하고 의존 욕구가 숨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애정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아버지는 바쁘고, 어머니는 형에게만 관심을 보입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이쁨 받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으로 설명합니다. 그럼에도 심지어 왕따까지 당했죠. 불 보듯 뻔합니다. 잘해도 본전을 찾기 어렵고 못하면 더더욱 자신을 미워하는 슬픈 역사가 반복 될겁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 때의 아픔을 평생 안고 살아가겠죠. 투사검사가 없었더라면 이 친구의 숨겨진 우울함과 애정결핍을 알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다만 투사검사는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객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요.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해석할 여지가 무궁무진합니다. 그래서 투사검사를 잘 신뢰하지 않았었는데, 방어적인 수검자를 파악하는데에 이만한 검사도 없다는 걸 배웠습니다.
아직 어린 친구여서 자신을 잘 포장하고 싶은 마음에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인도 똑같더라고요. 각종 검사에 열심히 괜찮은 척 좋은 척 하는 어른도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살펴보면 어린시절에 사랑이 부족했던 경험이 있고 나이가 들고 마음이 성숙해져도 그 부분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인 걸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심리 검사라는 것이 참 신통하다가도 누군가의 슬픈 역사를 만나는 것 같아 마음이 요상해 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나이를 먹고 육체적으로 성장하고 내면적으로 성숙해진다 해도 모두 누군가의 작고 소중한 아들이고 딸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 어린 친구들이 내 가슴 깊숙한 곳 어디에 계속 존재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오랜 시간 역동하고 있는 내 마음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작은 힌트들이 되거든요.
양 드림.
100 번째 메일입니다. 뭐 별로 한 거 없는 거 같은데 벌써 레터를 100개 보냈네요. 이런이런... 자축의 의미로 교촌 허니콤보 시켜 먹어 보았습니다... (배달 좀 그만 시켜..) 항상 감사합니다... (꾸벅) 100회를 기념하는 축사를 보내주시면 더 감사합니다...
ps2
여름의 여왕 안리의 노래입니다. <Fly By Day>는 카도마츠 토시키 선생님이 만든 노래입니다. 여름의 왕 카도마츠 선생님의 원곡도 함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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