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양입니다.
오키나와에 잘 다녀왔습니다. 바다수영도 질리도록 하고 지역 맥주인 오리온 맥주도 잔뜩 마시고 왔습니다. 처음엔 일본 본토와 조금 다른 식문화에 어리둥절했지만, 그래도 엄청 멀리있는 문화가 아니라 금방 적응하고 즐기다 왔습니다.
여행이었기에 오키나와 어딜가도 재밌었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경험을 꼽자면 아프리칸 바 <바오밥>에 간 기억이 먼저 떠오르네요. 들어가자마자 물 떼의 냄새와 묘한 인센스의 향이 꽤 별로였습니다. 어둑어둑한 조명이 더해지니 어질어질 하더라고요. 게다가 손님 한명 없고 아무런 음악도 없이 아주 적막함이 흐르기에 지금 가게를 하고 계신건지 여쭤봤더니 '노 뮤직 바'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정 듣고 싶으면 핸드폰으로 그냥 틀어도 된다고...)
저도 그렇고 같이 간 친구도 음악을 너무나도 좋아하기 때문에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첫인상이 빵점에 가까웠습니다. 당당히 메뉴도 없었습니다. 무엇을 주문하든 대응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 각 러스티 네일과 올드 패션드를 주문하고 주인장 선생님이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데... 흠... 역시나 칵테일도 빵점에 가까운 퀄리티와 맛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공간에서의 경험이 오키나와에서 지낸 3박 4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대화'에 있었습니다. 가게에 세상이 멈춘 듯한 적막함이 흐르니 놀랄정도로 투박한 칵테일과 그 잔에 든 얼음의 소리를 제외하고는 세 사람의 목소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국어 일본어 영어가 뒤섞인 엉망진창의 철학적(?) 대화가 시작 되었죠.
가게 이름이 '바오밥'인 이유와 적막함이 흐르는 공간에서 혼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 오사카에서 오키나와까지 흘러온 인생 등을 듣고 있자니 순간 이 바텐더의 외로움이 느껴졌습니다. 바오밥처럼 아주 큰 나무를 좋아하다는 말에서 힌트를 얻어서 그의 심리상태를 조금 알 수 있었고, 18년 동안 유지하는 공간이 너무 깔끔해도 병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엉망진창인 것도 어떤 마음의 병에서 오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도 그럴 것이 이번달 영업을 마지막으로 아프리칸 바 <바오밥>은 문을 닫습니다. 건물 주인이 바뀌면서 임대료가 두배로 오르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누군가가 인생에서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 역사적 순간에 우연히 만나게 되어서 반갑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게를 닫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사람을 닳게 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왜 이렇게 잘 아냐고요..? 묻지마세요...)
내용만 보면 꽤 우울한 경험 같지만, 정말정말 셋이 박장대소하고 얼큰하게 취하고 담배도 잔뜩 피고 우정을 다지고 나왔습니다. 셋이 셀카도 찍었는데 너무 얼큰하고 아저씨 같아서 보여드리긴 어렵겠네요. 어디에선가 다시 <바오밥>바를 하고 있으면 꼭 다시 들르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바오밥에서의 경험 이외에도 정말 즐거웠습니다. 오랜만에 3만보도 걸어보고, 맑은 바다에서 스노클링도 하고, 서해안 도로를 드라이브하기도 하고, 정말정말 맛있는 쿠시야키집에서 몇 시간을 먹고 마시면서 떠들고. 오랜만에 일본을 듬뿍 즐기고 왔습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 일과 상담 그리고 보고서에 뒤덮혀서 다음 여행을 기약해야겠죠.
여러분도 즐거운 휴가 보내시고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양 드림.
ps.
무라타 아저씨는 열대성 기후와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을 사랑합니다. 그의 데뷔곡인 <電話しても>의 질감과 분위기는 바다 그 자체입니다.
ps2
아 참고로 최악의 경험은 핸드폰 고장입니다... 실수로 바다에 빠뜨렸는데 제 핸드폰엔 구멍이 참 많더라고요. (후면이 다 깨져있었음...) 덕분에 3일차 4일차의 사진이 전부 날아갔고 여행의 묘미라고 하기엔 제일 비싼 가전을 박살낸 거라.. 머리가 어질어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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