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양입니다.
날이 많이 선선해졌습니다. 입추는 역시 과학입니다. 공기가 한껏 가벼워지고 바람이 산뜻해졌습니다. 여전히 한낮의 기온은 30도를 넘지만 그래도 기분탓인건지 엄청 덥다는 느낌은 없네요. (땀을 한바가지 흘리며)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매달 회비를 걷어서 저축해두고 분기별로 모여서 여행을 가거나 식사를 하거나 모임을 갖습니다. 이번 3분기 모임은 (아니 벌써 3분기야?) '서울나들이' 였습니다. 가락시장에서 1차를 하고 성수동에서 5차를 걸쳐 무려 12시간의 긴 모임을 가졌습니다. 아재 8명이 모여 실컷 먹고 마시고 떠들고 걷고 남이 보면 꽤 요상한 모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알고 지낸지는 이제 30년이 되어가는데 하나도, 정말 단 하나도 변한게 없어 보입니다. 여전히 서로 놀리기 바쁘고 항상 똑같은 일로 웃고 똑같은 일로 화를 냅니다. 아마 70대 노인이 되어서도 다 똑같이 행동할 것 같아서 그게 좀 무서웠습니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만큼 불 같지 않다는 점일까요. 조금은 힘(?)이 빠졌는지 예전이었으면 난리가 나서 강건너 불구경이 났어도 진작에 났을텐데 이젠 서로 '음 그래그래~' 하고 넘어가더라고요. 뭐 예를 들어서 삼겹살 2인분을 왜 더 시켰는지, 오징어가 그렇게 비싼데 오징어 물회를 왜 샀냐는둥... 진짜 10년 전만 해도 이런 미세먼지 수준의 주제로 박살나게 싸웠을텐데 안 싸우고 잘 넘어가지더라고요.
크게 달라진 게 있다면 아마도 다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서 아빠가 되었다는 점이겠네요. (나만 애 없어) 들어본적도 없는 유모차 브랜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어린이집이 어쩌구 유치원이 저쩌구 애 없는 사람은 대화에 끼기도 어려울 정도로 애들 이야기로 몇 시간도 떠들더군요.
'아이를 낳아서 생기는 행복 vs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는 마음' 이 주제로도 3시간은 싸운 것 같습니다. 싸웠다기보다 애초에 답이 없는 주제여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했죠.
그렇게 오전 11시에 모여서 밤 11시가 되니까 진짜 다 꼴뵈기 싫어져서 먼저 집에 걸어갔습니다. (만취로 집에 걸어가기 엔딩)
그러니까 입추가 지나서 선선해졌으니 서울을 돌아다니면서 맛있는 거 먹고 놀자 로 시작해서 다들 땀 열바가지 씩 흘리고 니가 잘했냐 내가 잘했냐 하다가 집에 돌아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선선해진 것 같다~ 했는데 여름은 여름이었고, 30년은 알고 지내서 이제야 좀 알 것 같은 친구놈들도 여전히 모르겠다~ 이런 이야깁니다.
날이 풀렸다고 방심하지 마시고, 오래된 관계라고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 착각하지 마시길... 이번 황금연휴 현명하고 시원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양 드림.
ps.
Keep on, Keep that same old fe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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