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양입니다.
오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좀 쉬어가는 레터로 결정했습니다. 딱히 별일은 없습니다만, 글쓰기 전용 메모장을 열어봐도 딱히 손이 가는 주제가 없네요. 재미없는 주제이거나 시의 적절하지 않거나 뭐 그런 핑계 때문입니다. 메모장에 의미 없는 단상과 단순히 나열된 단어만 가득한데, 그나마 좀 글을 써볼만한 주제는 '비지찌개가 먹고 싶다.' 라는 문장이네요.
어느날 문득 엄마가 해준 돼지김치비지찌개가 먹고 싶어서 혼났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3박 4일을 고민해도 답이 안나오겠지만 녹두부침개, 비지찌개 등의 음식이 꽤 높은 순위에 있을 겁니다. 그 정도로 비지찌개를 좋아하는데 가장 최근에 먹은 비지찌개가 약 1년전이라는 것을 어제 깨달았습니다. 아 이러면 비지찌개를 좋아할 자격도 없는 거 아닌가... 싶어서 좋아라 하는 비지찌개 플레이스에 가서 긴급수혈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잠깐. 아니 그래도 그냥 비지찌개가 아닌, '엄마가 해준 돼지김치비지찌개'가 먹고 싶었던 건데... 흠 당사자에게 연락을 해볼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혼자 살면서 밥을 해먹다 보니 가끔 본가에 내려가 냉장고를 좀 털어 오는데요. 엄마가 저에게 '뭐 먹고 싶은거 있으면 말해 준비해 줄게' 해도. 저의 대답은 항상 그냥 '아무거나'입니다. 실제로 뭘 먹고 싶다는 욕망이 평소에 강하지도 않고, 노인네가 또 땀흘려가며 준비할 생각을 하면 여간 불편한거죠 마음이. 아 엄마가 해준 무생채 진짜 맛있는데... 채칼로 썬 것 말고 엄마가 하나하나 칼로 채썬... (욕망 없다며...)
그래서 엄마에게 뭘 먹고 싶다고 해달라고 부탁한 게 언제인지 기억이 잘 안납니다. 언제일까 기억을 더듬으며 생각해 보니 되려 엄마가 꽤 서운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닿았습니다. 본가에서 밥을 먹는 사람은 이제 둘 뿐인데다가 바깥양반이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별 수 없이 혼자서 밥을 먹을텐데 얼마나 적적할까 싶네요. 집밥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뭐랄까 좀 내가 혼자 먹으려고 하면 좀 간편하게 조촐해지고, 누군가를 위해서 밥을 차린다고 하면 구색은 좀 맞춰야겠는 그런.
엄마에게 이제는 누군가가 이거 먹고 싶다, 저거 먹고 싶다, 이건 맛있네, 저건 별로네 하는 말들이 잘 없을 겁니다. 옛날에 다같이 살던 그 시절에 그런 말이 나왔다면 등짝을 한대 쫙 때리고는 주는대로 먹어 라고 했는데, 뿔뿔히 각자 살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반찬 투정하는 사람도 때릴 등짝 조차도 없다는 사실이 엄마에게 적적한 외로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이제 엄마가 직접 콩을 가는 그런 일은 없길 바라며 비지찌개를 부탁해야겠습니다. 왜 갑자기 엄마가 해준 돼지김치비지찌개가 먹고 싶어졌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날 저도 꽤 적적했나봅니다.
양드림.
ps#1
쉬어가는 레터라고 해놓고 글을 쓰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허허.
ps#2
제가 좋아하는 비지찌개 플레이스는 기와집 순두부 서초점입니다. 본점도 가봤는데 딱히 뭐 본점까지 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강남 지나갈 일 있으시면 들러서 기분 좋게 식사하실 정도는 됩니다. 몇년 전인가? 바로 앞 건물로 자리를 옮겨서 확장했는데 (없어진 줄 알고 진짜 주저앉을 뻔) 새로운 곳은 좀 깔끔해서 오히려 별로긴합니다. 예전 자리의 바이브가 음식과 정말 궁합이 좋았는데 말이죠. 맛은 딱히 변하진 않았고요. 비지찌개 드시면서 곁들일 녹두전 주문은 필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