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양입니다.
저는 누구나 그러하듯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좋아합니다. 그 수많은 종류 중에 반찬, 그 안에서도 무생채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니 무슨 갈비찜도 아니고~ 생선조림도 아닌~ 그것도 배추김치처럼 메인이 아닌 하위호환 무생채를 왜 좋아할까 의문이긴 하지만 어머니의 음식 중 딱 하나 꼽으라면 무생채가 생각이 날 정도로 좋아합니다.
게다가 무를 채칼로 썬 것이 아닌 칼로 먼저 편을 썰고 촵촵 채를 쳐서 만든 무생채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방금 막 무쳐 낸 것이면 거의 완벽하게 제가 좋아하는 무생채가 됩니다. 가끔 무생채를 초에 절이고 단맛과 신맛을 넣은 버전도 있는데 안됩니다. 김치 속을 만드는 것 처럼 그냥 평범하게 액젓으로 맛을 낸 개운한 무생채가 좋습니다.
이렇다보니 어머니도 항상 무생채를 만드실 때 부담이 큽니다. 무생채를 맛 보는 기미상궁(?)이 엄청 까다롭게 무생채를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지만 어차피 어머니가 만든 무생채는 열에 아홉은 다 맛있습니다.)
매번 칼로 하나하나 채를 썰어야 하는 것도 일이고, 눈대중으로 간을 맞춘다해도 기미상궁의 입맛에 맞게 적당히 조미료를 배합해야하기 때문에 영 귀찮은 반찬이기도 하죠. 그리고 무가 맛있어지기 시작하는 가을에서 봄 정도까지 만 무생채를 맛볼 수 있습니다. 여름 무로는 맛있게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여름엔 그 무생채를 만날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오랜만에 보내주신 무생채를 받고 고기를 약한 불에 천천히 삶아 얇게 저며 내어 함께 먹었습니다. 이 적절한 짠맛과 씹을 수록 올라오는 무의 단맛과 개운함. 돼지고기와 함께 최고의 궁합을 보여줍니다. 한 입 가득 먹고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나는 이 무생채를 좋아할까.
간이나 맵기는 뭐 매번 다르기에 무생채를 좋아하는 이유에 잘 들어가지 않을 것 같고 익숙함도 있을 것이고 어머니의 정성도 있겠습니다만.. 고민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무채 굵기의 다양함' 입니다. 이 얇고 굵은 정도의 차이로 단만과 쓴맛과 개운함이 제각각이고 그 제각각의 다채로운 맛에 포인트가 있는 거죠.
제각각 생긴 모습으로 제각각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모양이 들쑥날쑥해도 시각적으로 용인할 수 있다면 오히려 매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일정한 굵기로 반듯하게 담긴 무생채도 의미가 있겠으나 둘쑥날쑥한 굵기로 투박하게 담긴 무생채의 맛은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다양성에 대해서 한 꼭지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있었는데, 무생채 한 입에 여러 생각들이 겹치네요. 역시 맛있습니다.
양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