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양입니다.
몇일 전 감기에 걸렸습니다. 원래 환절기가 되면 기관지가 조금씩 망가지게 되는 알러지성 비염을 만성으로 달고 있지만, 가끔 증상이 심해지고 운이 좋지 않으면 이렇게 감기로 올라옵니다. 기침이 너무 많이 나서 목도 아프고 결국은 열이 펄펄 끓고 해야만 하는 일들의 난이도가 높아졌네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열병이나면 꾸는 꿈이 있습니다. 어떤 서사가 있거나, 등장하는 인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원형의 무엇인가가 복잡하게 펼쳐진 요상한 꿈입니다. 이렇게 특정하게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을 중학생이 되고나서 조금씩 인지 하기 시작했는데요. 어렸을 때의 기억과 성인이 되고 나서의 기억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쌓인 지식들로 그 요상한 꿈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일종의 메커니즘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그 꿈은 수십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 흐릿해서 정확하진 않고요..)
열병이 났으니 '발열 증상'이라고 한다면, 몸 안에 있으면 안되는 바이러스가 침입했고, 그 바이러스는 체내에 온갖 염증을 유발합니다. 기관지에 생긴 염증은 점막과 뒤섞여 가래를 만들고 그 가래를 내보내기 위해 몸에서 기침이라는 운동을 작동시키죠. 또, 몸에서는 그 바이러스가 기관지를 넘어 다른 기관에도 염증을 만들기 전에 체온을 높여 못살게 만들어버립니다. (어이어이.. 나도 못살겠는데...) 이런 식으로 그 꿈에서 어떤 과정이나 작동 원리, 무언가가 서로 작용하는 느낌이 떠오릅니다.
저는 어떤 것의 작동 원리나, 작용 과정을 집요하게 궁금해 하고 한가지 주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공부를 좋아합니다. 학창 시절에는 무조건 달달달 외워서 알고리즘 기계가 되어서 입력 값을 넣고 출력 값을 정확히 내는 것에만 집중해서 그런지 공부가 하나도 재미없었는데, 대학 시절부터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깊게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가 왜 그럴까. 그러니까 그 '왜'에 아주 정확하고 유일하고 명백한 답이 있고, 결과가 이미 나왔다고 해도 그 과정을 궁금해하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 그 답에 도달하는 지, 어떤 작동의 원리가 있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무엇이 작용해서 그 결과가 나왔는 지 궁금해 하는 것. '왜?'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계속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
특히나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는 이 고민이 더더욱 유효한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결과적으로 어떤 사람이 '우울하다'는 결론을 지었을 때 그 결과에 집중해 우울을 없애려는 행동보다, 왜 우울하게 되었는 지 과정을 짚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거든요. 우울 뿐만 아니라 불안, 분노 등 모든 감정에도 해당 되는 말입니다.
열이 나면 잠을 깊게 잘 수 없으니 항상 꿈을 꾸게 되는데 그때마다 같은 꿈을 꾸는 게 신기합니다. 생긴거 치고는 잔병치레는 없는 편인데, 오랜만에 열이 펄펄 끓었네요. 열병을 핑계로 오전 6시가 아닌 오후 6시에 보내는 편지가 되겠습니다.
여러분도 일교차가 심하니 몸조리 잘 하시고요.
양 드림.
ps
요즘 금연 중인데 진짜 글을 쓸 때마다 미치겠네요. 휴... 메일에 금연 N일차 라고 매번 적어서 꼭 성공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