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양입니다.
사람의 마음 안쪽에 있는 말들을 꺼내어 보는 것이 저의 일인데, 정작 저의 마음 안쪽에 있는 말들을 꺼내어 놓아야 할 때면 영 불편합니다. 그러니까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이런 글을 쓰게 됐을까 싶습니다만, 그래도 말을 엎질러 놓았으니 수습은 해야겠죠. 나의 생각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은 마음과 부끄러워 쓰기 싫은 마음이 충돌하고 있는데, 고민해보니 뭐가 그렇게 또 불편할까 싶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 뭣하지만, 저는 배려가 미덕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실행하며 살고 있습니다. 배려한다는 것은 존중한다는 것과 비슷한 말이겠죠.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생각을 해도 이해해주고 받아들인다는 뜻일 겁니다. 그럼 수용이라는 단어와도 맞닿아 있겠네요. 또 배려는 공감에도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는 말을 많이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배려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길 응원함.'으로 이해하고 있고, 그 관념을 마음 속에 가득 담아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배려하고 있느냐 아니냐는 잘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저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관계를 대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태도 덕분(?)에 저를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저의 태도가 남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실 더 오래전부터 눈치 챘는데, 그때는 불편해 하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자유롭게 당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시오.' 라고 하는데 왜 불편해 할까 싶었던 거죠.
최근에 친구와 문자를 주고 받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이런 메시지가 왔습니다. 저에게 선택지를 주면서, 1. 답장을 하지 않는다. 2. 최대한 친절하게 답장한다. 3. 지독히 현실적으로 답장한다.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 나는 어떤 답이든 괜찮다.' 라고 답했고, 상대는 마지못해 1번을 선택하고 답하지 않으며 저와 이야기하는 것이 가끔 힘들다 혹은 불편하다는 기색을 비쳤습니다.
저는 그것이 상대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세 가지의 선택지를 주었다는 건 또 하나의 '배려'일테고, 나아가서는 당신에게 어떤 식으로 대답할지 잘 모르겠다는 '고민'이기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배려한답시고, 존중하고 이해한답시고 선택을 하지 않으니 되려 상대는 배려를 거절당하고 고민이 커져버리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가끔 과도하게 배려하고 남을 생각해주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미덕이라고 오해하고 남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선택지를 열어주는 무한한 수용은 얼핏 완벽한 배려 같지만, 실제로는 모든 결정의 몫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무언의 압박이었습니다. 상대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이해와 배려를 쏟아부으면, 도리어 상대가 피곤하고 부담스럽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특히 저는 갈등을 과도하게 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맹목적으로 상대를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양립할 수 없는 나의 의견을 상대에게 들이밀어서 갈등이 생기고 조율할 일이 생기는 것 보다, 그냥 상대방의 뜻에 따르는 것이 마음 편합니다. 그럴 때면 배려라는 단어 뒤에 숨어버리는 저를 발견하게 된 것이죠.
과도하게 배려한다는 것은 오히려 상대에게 짐을 떠넘기는 것. 누군가는 그 짐을 떠 받고는 지쳐있었는데, 저는 상대를 배려했다고 혼자서 뿌듯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몰려옵니다. 그래서 마저 고해성사를 하자면..
배려는 관계를 잘 이어가기 위해서 애써서 노력하는 것. 하지만 내가 관계에서 쓰는 배려라는 단어는 남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함이 아닌, 그 어설프고 뭉툭한 배려 뒤에 숨어 나약하고 겁이 많은 나를 들키기 싫은 것. 내 안쪽 깊숙히 자리하는 무언가를 꺼내어 놓기 싫은 마음은 언젠가 격렬히 그것들을 꺼내어 놓았을 때 그것을 상대에게 이해 받고 수용 받지 못했던 경험들의 산물. 누군가에게 내 생각과 욕망이 거부 당해도 다시 그들에게 나의 생각과 욕망을 관철시킬 용기가 없는 것. 그래서 나의 배려는 그들에게서 도망치는 것. 언제나 내 생각과 욕망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착각하는 어린 마음에서 한 톨도 자라지 않은 어리숙한 마음. 그 미성숙한 마음을 가지고 남에게 기대어 가는 주제에 어른 노릇한답시고 자신을 깎아가며 상대를 배려하고 있다고, 수용하고 있는 거라고 말하는 대단한 착각. 내가 과도한 배려를 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
진실을 마주하는 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면, 조금 불편해도 될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쓴 글에 내가 아닌 다른 독자가 있다는 건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면, 가끔은 부끄러워도 될 일인 것 같습니다.
양 드림.
여전히 심리상담 혹은 심리검사 신청이 가능합니다. 언제든 편하게 신청해주십쇼!
아니 스티비가 왜 이런 시스템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구독자를 자동으로 삭제하는 시스템이 있더라고요. 전혀 몰랐는데, 가까이 지내는 사람으로부터 뉴스레터를 그만 두었냐는 질문이 와서, 예? 매주 뭣빠지게 쓰고 있는데요.. 하고 확인해보니 구독자 목록에서 자동으로 발송을 안하는 그룹으로 넘어가 있더라고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언제나 믿고 발송버튼을 눌러왔는데, 이제는 관리를 잘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갑자기 레터를 받지 못한 분들이 무려 124명이나 있었다는 걸 알게되니 힘이 빠지네요.. 으으.. 바보같은 저를 용서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