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용희가 출근 준비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 선배가 보낸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용희는 회사에 도착해서 읽을까,라고 잠시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니, 이 선배가 보낸 건 내가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가 들킬 수 있는 카톡이 아니라 그냥 문자였다. 그래서 용희는 읽었다.
[10시쯤에 3층 탕비실로.]
하아, 10시면 10시고 10시 5분이면 5분이지, 10시쯤은 뭔 말이야. 그리고 3층? 3층은 고려일보가 쓰는 층이다. 이 선배는 사람을 왜 이렇게 피곤하게 해.
전날 워라벨을 즐긴다고 위스키를 온 더 락으로 네 잔이나 마신 탓인지, 용희는 아침부터 피곤과 짜증이 가득했다. 어지러운 몸을 겨우 일으켜 샤워를 마친 용희는 술에 취해 실수한 게 없는지 어젯밤을 천천히 복기했다. 매번은 아니지만, 결혼식에 축의금으로 3만 원 내고(취준생일 때) 남자친구 (당연히 지금은 전 남자친구다)까지 데려갔던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전화를 걸거나, 할아버지 유산을 비트코인으로 절반 이상을 날려서 의절하다시피 한 엄마(당연히 날린 건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경우가 있었다. 사실,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더 끔찍한 일도 있었다. 아무튼, 스마트폰 통화내역, 회사 단톡방, 인스타그램 DM... 등등 샅샅이 살펴보았는데, 다행히 이상한 짓은 안 했다.
아, 그래서 선배가 나에게 보자고 한 건가? 천천히 과거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니 생각났다. 어제 퇴근 때 하지 못한 ‘그’ 이야기.
10시쯤, 3층 탕비실에서 만난 이 선배는 먼저 어제 연락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용희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이 선배는 말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용희도 선배를 따라 주변을 둘러봤다. 둘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 선배는 믹스커피를 타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기사들. 내가 쓴 거 아니야. 네가 신경 쓰는 수진 씨 사건.”
“그럼 누가 썼어요?”
“부장.”
이 선배는 짧게 두 음절만 발음했다. 용희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장이 이런 ‘하찮은’ 기사를 쓴다고? 취재는 가지도 않으면서?
“부장이 뭐하러 그걸 써요? 아, 아니, 취재도 나가고 그래서 직접... 만년필로 원고지에 써서 줬어요?”
용희가 물었다.
“그건 몰라. 마감 전날에 A4용지에 프린트된 기사를 보낸 다음에 그걸 워드로 옮기라고 했어.”
“수정은 없고요?”
“맞춤법 정도.”
조용한 대화는 여기까지 이어지고 잠시 끊겼다. 두 사람은 종이컵에 담은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말이 없었다.
“설마, 승진 뭐 이런 거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겠죠?”
먼저 커피를 다 마신 용희가 말했다.
“이 사건이 무슨 대기업 회장 감옥에 집어넣거나, 검찰 사건... 이런 특종도 아니고, 국회위원이나 무슨 장관, 이런 사람들 비리를 숨겨주는 것도 아니고... 아니, 차라리 그런 사건이면 이해라도 하지. 그래서, 솔직히 나도 좀 궁금해졌어.”
이 선배가 말했다.
“뭐가요?”
“꼭 뭐가 있을 것 같지 않냐? 기자의 직감으로 느껴지는데.”
+글소개: 29살 조 기자의 성장형 액-숀 활극.